Money to Burn by OU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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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ftp.xmission.com/pub/users/l/lazlo/music/klf/news-reviews/kfoundation-19940925-observer-burn.txt

https://youtu.be/h5YA0Uq2wXM

Money to Burn

The K Foundation은 예술을 빙자한 스캔들을 일으킨다. 그들은 대중음악상 시상식장 앞에 죽은 양의 시체를 늘어놓았었으며, 크롭 서클을 꾸며내었었고, Rachel Whiteread에게 £40,000를 주었었다. 이제 그들은 £1,000,000를 불태웠다고 주장한다… 아니면, 정말로? 한 저널리스트가 그들의 여정에 동참했으며, 이 글은 사건에 대한 그의 기록이다. 진위 여부는 스스로 판단하라.

Senecca 마크-3, 좌석 4개짜리 경비행기의 뒷좌석에는 올 한해 일어난 가장 괴상한 이야기의 결과물 일부가 놓여 있었다. 이 글을 읽어볼 그 누구도 이 이야기의 단어 하나도 믿기 어려워 할 것이기에, 괴상한 이야기이다. 이 글에 쓰여진 단어 하나, 마침표 하나 전부 진실이기에, 괴상한 이야기이다.

나를 제외한, 이 비행기에 탑승하고 있는 다른 3명의 승객은 이렇다: 한때 KLF라는 팝 그룹 멤버였고 이제는 the K Foundation(예술 재단이다) 의 멤버인 Jimmy Cauty와 Bill Drummond, 그리고 Falklands 전쟁에서 포병대로 근무했었으며 록 그룹 투어 매니저 일도 했었던, Gimpo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진 Alan Goodrick.

비행기 좌석 뒷 편에는 우리 넷의 짐이 있었다. 배낭들, 더플백들, 딱히 대단하다 할 만한 건 없었다. 거기에 2개의 Gabriel 여행가방이 있었다. 하나는 비어있었다. 다른 하나에는 한때 £1,000,000의 지폐였던 것이 타고 남은 재가 들어있었다. 현금 말이다. 24시간 전, the K Foundation은 £50,000 지폐 뭉치 20개를 불로 태웠다. 20,000장의 £50 지폐를 불에 넣어 연기로 만들었다. 딱히 특별한 이유 없이. 그리고, 분명히 말해야 할 것은, 딱히 놀랍지도 않은 일이었다.

£1,000,000는 Inner Hebrides 제도 내 Jura 섬의 한 버려진 보트 창고에서, 특별한 행사 없이, 8월 23일 화요일 새벽 12:45~2:45 사이에 불태워졌다. 이 날 밤은 추웠고, 바람도 심하게 불고 있었으며, 비까지 내리고 있었다. 지폐는 좋은 모닥불이 되어 주었다 - 차트 1위도 했었던 듀오가 자신들의 계좌에 남겼던 재산의 거의 전부였던 돈이 말이다. 불이 꺼지고 난 이후에는 추위와 비, 재 뿐이었다. 어째서인지 일어났던 모든 일이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 이야기는 고통스러운 플롯,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골목길들, 그리고 계산 착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이야기는 Cauty, Drummond 그리고 '아이디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만약 the K Foundation이 자행한 일이 예술이었다면, 그리고 내가 그것을 판단하는 사람이었다면, 이 글은 예술 작품의 서막이 될 것이다. 이 글이 없다면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본격적인 설명에 들어가기 전에, 이 점을 고려해 달라. 만약 당신이 £1,000,000의 지폐가 불타는 것을 보게 된다면, 어떤 감정으로 보게 될 것 같은가? 분노? 공포? 나는 처음에는 엄청난 죄책감이 들었다가, 곧, 대략 10분정도 흐른 후, 지루하게 불을 보게 될 거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불이 다 꺼진 후에는, 그냥 추워질 뿐이다.

백만 파운드를 불태우는 여정은 1994년 K Foundation Award로 시작하여, 기획되었던 예술 전시회의 포기로 끝난다. 나는 the K Foundation을 지난 11월, 그들이 £40,000의 상금을 올해 최악의 예술작품을 만든 예술가에게 수여하려고 하기 10일 전에 처음으로 만났었다. 이 상은 같은 날 Turner Prize도 수상했던 예술가 Rachel Whiteread에게 시상되었었다.

Bill Drummond는 12년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지만, Jimmy Cauty는 처음 만난 사람이었다. 저 상이 시상 되었던 날이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그 둘은 나를 고용하여 곧 진행될 예정인 [Money: A Major Body Of Cash]라는 전시회의 카탈로그 작업을 맡겼다. 이 전시회는 7개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모든 작품 각각에 적당한 액수의 지폐가 못으로 박혀 있거나, 끈으로 매여 있거나, 그냥 위에 놓여 있거나 했다. [Nailed To The Wall]이라는 작품은 50 파운드짜리 신권으로 총 £1,000,000의 현금이 나무로 된 벽에 못으로 고정되어 있었으며 경매에 부쳐질 예정이었다 (시작가는 £500,000 였다). 다른 6개의 작품들 중 5개의 작품이, 우편 형식의 입찰을 통하여, 각 작품에 사용된 현금의 액면가의 절반에 해당하는 값으로 낙찰되었다. 이 경매를 통해 the K Foundation이 입은 손실액은 대략 £555,555 정도였으며, 만약 [Nailed To The Wall]이 예술 작품으로 여겨지게 된다면 (다시 말해서 백만 파운드보다 더 높은 값으로 팔리게 된다면) 이익을 볼 수도 있을 것이었다. '예술 작품 시장'에 대한 풍자라고 생각한다면, 이 전시는 나름 귀엽다고 봐 줄 수 있는 행동이었다. 만약 £100,000의 작품이 £50,000에 팔리고, £10의 작품이 £5에 팔린다면, £100,000의 작품이 "더 위대한" 예술이었던 것인가?

두 작품 모두 똑같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작품이므로, 아마도 예술적인 가치는 같을 것이다. 아니면, 돈이야말로 예술에서 유일한 가치인가?

이 전시는 그동안 the K Foundation이 벌여 온 도발적인 행위들 중 가장 극단적인 사건이었으며, 이 둘은 예전부터 비슷한 행위들을 통해 악명을 쌓아오고 있었다. Cauty와 Drummond는 스스로를 KLF라고 알리고 다니며 가짜 크롭 서클을 만들거나 50명의 음악 비즈니스 관계자들을 Jura 섬으로 불러 이교도스러운 의식을 벌이느라 £70,000를 소모하기도 했었다. 이들은 KLF가 올해 최고의 영국 밴드로 뽑혔다는 것을 밝히는 행사 장소에 죽은 양의 시체를 던져놓음으로써 자신들이 팝 세계에서 떠난다는 것을 알렸으며, 그 후 모든 백 카탈로그를 말소했다. The K Foundation Award으로 이어지는 과정에, 이들은 £125,000를 소비해 여러가지 알 수 없는 광고를 게재하였는데, 그 중 하나에는 '모든 예술을 폐기하라'라고 쓰여 있었다.

Cauty와 Drummond가 중점적으로 생각하던 주제는 돈이었다: 예술으로서의 돈, 돈으로서의 예술. 돈을 넘어선 의미라는 것의 가능성. 돈의 힘에 대한 도전. 만약 그 무엇도 말이 안된다면, 어쩌면 말이 안된다는게 의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과연 자신의 돈에 대한 논의를 예술 기관들 속으로 진입시킬 수 있을 것인가? 첫 기회는 Drummond의 오랜 친구이자 Liverpool Festival Trust의 감독인 Jayne Casey에게서 왔다. "Liverpool의 Tate 갤러리가 21세기 페스티벌에 참여하고 싶어했었다. 나는 the K Foundation 전시를 추천했다; 처음에는 관심을 보였는데, 하지만 그들은 전시에 관련된 '사람'들에 대해 걱정하는 것처럼 보였다."

Tate 갤러리 큐레이터 Lewis Briggs의 퉁명스러운 어조의 팩스가 Casey에게 도착했다: the K Foundation는 이미 돈에 관련된 전시를 진행한 바 있으며 그 때가 더 흥미로웠었다고. 계획을 진행하려 할 때 발생하는 이런 차질은 the K Foundation에게 강하게 작용했다. 그들은 마음을 바꾸었다. "일에 지장이 생긴다는 것은, 현재 아이디어를 보완해 좀 더 괜찮은 아이디어가 나오도록 등을 떠미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Cauty는 말했다.

"우리는 [Nailed To The Wall]이 담긴 상자가 전 세계를 여행하길 바랬다. 기차를 타고 구 소련 영토를 지나, 배를 타고 미국으로 간 후, 트럭을 타고 미국을 횡단한 다음 배를 타고 Liverpool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돈이 세계를 한번 일주할 것이고, 일주를 끝낸 돈을 직접 우리의 손으로 받아, 현금의 끝을 축하할 것이다." Drummond의 말이었지만, 이들은 구 소련 영토의 무법지대에서는 사람들이 돈에 대해 향수병 어린 감상적인 시선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그 어떤 회사도 이런 프로젝트의 책임을 맡지 않을 것이었다. 5월이 되자, 이들은 계획을 바꾸어 Dublin에서, 특별히 1916년 부활절 봉기의 주동자가 처형되었던 Kilmainham Jail에서 새 전시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8월 이전에는 어떤 식으로도 전시가 시작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이들은 전시회라는 아이디어 자체를 그냥 파기해 버렸다.

"Jimmy가 그러더군: '그냥 불태워버리면 안될 이유라도 있나?' 내 생각에 Jimmy는 그냥 지나가는 말로, 내가 '아니 그럴 수는 없지, 대신 이런 걸 해 보자...' 같은 대답을 하길 바라면서 던진 것 같았어. 하지만 생각해 보니 불태우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강력한 일인 것 같아 보이더군." Drummond에 따르면, 돈이라는 것은, 언제나 어딘가로 가 사라져야만, 쓰여져야만 하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한 번의 이벤트를 위해 쓰여질 것이었다. 타닥타닥 타는 소리와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The K Foundation은 자신들의 재정적 안전성 같은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아 왔었지만, 이번의 백만 파운드는 좀 특별한 것이었다. Cauty와 Drummond는 자신들이 과거에 만들어 낸 것들을 낮게 평가하는 경향을 갖고 있었다. 이 백만 파운드는 과거 좋은 비평을 받았던 음악계 커리어의 산물이었지만, 지금의 그들에게는 그저 실패처럼 보였다. 어쩌면 돈을 불태우는 행위는 일종의 하제(laxative)와 같은 역할을 해 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만약 이 듀오가 전통적인 '명성'의 함정에 빠지는 것을 피하려 했다고 한다면, 모든 시각에서 사라지지 않고 지속되는 이 모든 감정들은, 버려진 프로젝트들에 화려하게 낭비되었던 모든 돈은, 결국 좀 더 오래 살아남을 어떤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불멸성' 같은 작은 것들 말이다. 그리고 그 것에 다다르기 위해선 결국 점점 더 큰 배팅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둘 모두 반골은 아니었다. 만약 이 둘을 무언가라고 해야만 한다면, 낭만주의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전에 Liverpool 록 밴드 Echo And The Bunnymen 그리고 Teardrop Explodes의 매니저로 일했었던 Drummond는 큰 키에 주걱턱을 가진, 안경을 쓴 남자였다. Drummond는 시골에서 살면서 자신의 농장에 4마리의 소를 기르고 있었으며 새를 즐겨 관찰하곤 했다. 17살에 이미 Athena에서 가장 잘 팔린 [The Hobbit] 포스터를 만들었던 Cauty는 마른 체격에 조용한 애연가였으며 시끄러운 London 중심부 주택에서 살고 있었다. Cauty는 Saracen 수송장갑차와 AK47 모형을 갖고 있었다.

Drummond와 Cauty는 특별한 디자이너 브랜드 옷을 입지 않았으며 유행하는 클럽이나 레스토랑에도 가지 않았다. 둘 모두 유명한 친구도 딱히 사귀려 하지 않았고, 저명한 잡지에 인터뷰도 하지 않았다. 일반적인 팝 스타를 생각한다면 이 둘은 사실상 익명의 은둔자에 가까웠다. 뮤직비디오에도 모습이 나오지 않았고, 타블로이드에 슈퍼모델과 팔짱을 낀 사진 같은 것도 실리지 않았다. 어쩌면 이런 은둔이 당시 이미 꽤 나이를 먹은 상태여서 세상에 대해 좀 더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Drummond는 40대 초반, Cauty는 37살이었다), 이들이 성공으로 벌어들인 돈을 스포츠 카 보다는 새로운 아이디어에 투자했었다는 것 또한 큰 이유였을 것이다.

이들은 세상에 홍보할 만한 것을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지난 몇년간 1백 25만 파운드에 해당하는 돈을 단순히 자신들의 아이디어 그 자체에 투자했으며, 이에 대한 근거는 그저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 하나 뿐이었다. 아마도 광기, 혹은 자의식 과잉의 끝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그들 스스로가 하고싶어했던 일이었다. Drummond에 따르면, "돈은 우리의 소유였던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돈은 the K Foundation의 소유였으며,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사용될 수 있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처음의 목표는 이 돈을 투자해 자본을 불려 단 한번의 큰 이벤트, 예를 들자면 2000년의 시작 같은 것에 전부 소모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남은 돈 전부를 불태운다는 단순한 행위조차도 복잡 미묘한 우여곡절을 통해 일어난 일이었다. 원래 계획은 Tate 갤러리의 디렉터인 Nicholas Serota에게 편지를 써서 [Nailed To The Wall]을 "1995 K Foundation Bequest To The Nation"이라는 이름의 작품으로 판매하고자 하는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갤러리 측에서 조건을 받아들인다면 이 작품을 Tate에서 10년간 전시한 후, 작품을 파괴하는 대신 작품의 소유권을 공식적으로 갤러리에 넘길 것이었다.

하지만, 보내졌더라면 사실상 협박 편지 이상의 의미는 못 되었을 이 편지는 결국 보내지지 않았다. Tate 갤러리가 이미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할 수도 있어 보였기에, 그리고 그렇게 결정을 내리는 것이 사실은 충분히 타당한 결정이었기에, the K Foundation의 목표는 자신들의 작품을 불태우는 것이 되었다.

이들은 중개인을 쓰지 않기로 결정한 후 모닥불을 피울 장소로 Bankside 발전소를 직접 선정했다. 이 곳은 Tate 갤러리가 매입하여 새로운 건물을 지을 장소로 내정되어 있었으며 South Bank 지역을 내려다보는 인상적인 건물이었다. 이 행사를 위한 포스터 캠페인 또한 계획되었다. 포스터는 8월 15일에 곳곳에 붙여질 예정이었으며, 포스터에는 [The 1995 K Foundation Bequest To The Nation], 즉 이젤에 걸린 [Nailed To The Wall]과 그 앞 바닥에 놓인 2개의 화염병의 사진이 인쇄될 것이었다. 8월 24일에는 똑같은 포스터이지만 이번에는 화염병으로 불태워진 [Nailed To The Wall]의 사진이 있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해당 발전소는 이용이 불가능했고, 실제 행사가 일어나기 몇 주 전에야 Rainham Marshes의 쓰레기장을 행사 장소로 예약할 수 있었다.

계획이 완성되어감에 따라, 우리는 [Nailed To The Wall]이 불타고 난 후의 재를 전시하는 것에 관심을 보인 한 갤러리 소유주를 만나러 갔었다. 40대 초반의 근엄한 이 남자는 the K Foundation의 계획에 어떠한 예술적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고,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비슷한 시도는 예전에도 있었다. 단지, 이번에는 액수가 너무 클 뿐이었다. 갤러리 소유주는 또한 이 이벤트가 불러일으킬 소란이 이 행위 자체의 영향력을 축소시킬 수 있다고 믿기도 했다.

갤러리 소유주는 회고한다: "결국 이들에게는, 이 행위가 예술작품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말지의 여부 따위 보다는, 이 행위를 직접 해 본다는 사실 자체가 훨씬 더 중요한 것 같았다. Bill에게 마지막으로 건넸던 제안은 그들을 딜레마에서 구해주고자 하는 의도였었다. 돈을 아무도 손댈 수 없는 곳에 넣으면 사실상 불태우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냐는 말이었다. 그리고 파괴의 권리를 작품 구매자에게 넘기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 권리를 구매해서 돈을 정말로 파괴하거나 아니면 뭐 그 권리의 이행을 무기한으로 연기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 둘은 돈을 직접 파괴한다는 그 카타르시스를 원하고 있었다. 이 욕망은 방종에 가까웠으며, 이로 인하여 행위의 예술적 가치가 약해지고 있었다."

반면, Drummond는 이렇게 회고한다: "우리가 돈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들 중 불에 태운다는 것이 그나마 가장 괜찮은 일이었다. 예술이 아닐지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중 가장 중요한 성명이 될 것이었다. 우리는 돈에 관하여 뭔가를 표현해야만 했고, 이 표현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고 가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어쨌든 우리의 계획을 예술의 틀에 끼워 맞추려고 노력했다." 계획되었던 전시일로부터 1주일 전, 계획은 또 다시 바뀌었다. 대중에게 공개된 불태우기는 없을 것이고, 언론이나 TV 또한 없을 것이었으며 ("그렇게 공개하는 게 뭔가 '홍보'로 비춰질 것 같았다") 오로지 단 한 명의 목격자만이 있을 것이다. Cauty가 처음으로 떠올린 사람은 Damien Hirst였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결국 이들은 나를 골랐다. 계획을 통틀어 내가 알 수 있었던 것은 오직 Drummond가 8월 22일 아침 나에게 전화를 줄 예정이라는 것 뿐이었다.

Drummond는 22일 오전 9시에 내게 전화하여 걷기 좋은 신발을 신으라는 조언을 해 주었다. 여행에는 한 명의 동행, 즉 Gimpo가 함께 할 예정이었으며 이 때가 내가 Gimpo를 처음으로 만나게 된 때였다. Gimpo는 Cauty의 집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좋은 체격에 회색 터틀넥, 리바이스 청바지, 그리고 검은 부츠를 신고 있었다. The K Foundation 또한 리바이스 청바지와 평상복을 입고 트레킹 장비와 군용물품을 챙기고 있었다. 이들은 London에서 두 개의 큰 여행가방을 샀고, 바로 강을 건넜다. "이제 Ratedale이라는 회사에서 돈을 인출해서 챙겨야 해." Cauty의 말이었다.

그 어떤 은행도 백만 파운드의 현금을 보관하고 또 바로 지급해 주지는 않았으니, the K Foundation은 한 보안업체를 고용해 Kent에 있는 NatWest 금 센터에서 돈을 가져오도록 하였다. 우리는 Gatwick 공항 근처의 사유지로 들어섰고 모던한 느낌의 창고 건물 앞에 섰다. Cauty와 Drummond는 차에서 나와 19번 문 앞의 도어벨을 울렸다; 이 둘은 여권과 여행가방을 들고 있었다. 대략 5분이 지나자 두 명의 보안요원이 나왔는데 한 명은 문신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보안요원들은 Cauty의 차 상태를 보고 웃어댔다. "이거 안전검사는 받은 거 맞지?" 이렇게 한번 물어보고는 고개를 저으며 건물 안쪽으로 사라져갔다.

여행가방은 차 뒷편에 실었고, Gimpo는 행선지를 듣고 차를 몰았다. 차는 Sussex와 Surrey의 시골길을 지나 Redhill 비행장에 도착했다. 파일럿 Hugh를 만났다. 이 시점에서 내가 알았던 것은 여행이 대략 2시간이 걸릴 예정이며 서쪽으로 향할거라는 것 뿐이었다. Drummond는 자꾸 Senecca 비행기의 문을 가지고 놀면서 돈이 들어있는 여행가방을 그냥 공중에서 던지는 것은 어떠냐고 묻고 있었다. 우리는 바다로 쭉 뻗어나와있는 Islay 공항 활주로에 착륙했다. 미리 예약해 둔 택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는 이 택시를 타고 Askaig 항구로 간 후, 페리를 타고 Jura 섬으로 향했다.

Cauty와 Drummond는 Jura 섬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3년전, 이 둘이 아직 KLF였던 시절, 이들은 Jura 섬에서 화려한 신비주의적 쿠데타를 기획/실행했었다. 하짓날 50명의 음악산업 종사자를 이 섬으로 초대하여 노란색 로브를 입히고 미리 만들어 둔 60피트짜리 위커맨 인형으로 데려가 갖고 있는 돈을 위커맨에게 던지게 했으며, 위커맨에 불을 붙여 모든 것을 불태워버렸던 것이다. 행사는 대단한 광경이 되었으며, 이를 녹화한 필름은 [The Rites of Mu]라는 이름으로 영상화되었다. "이 영상을 보면서 생각했었다: '저 곳이야말로 우리가 가서 계획한 그 일을 할 바로 그 곳이다...' Jura 섬으로 가서 일단 따라 가 보는 것이지."

우리는 Jura 호텔에 묵었고 저녁으로 해기스를 먹었다. 계획은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여행가방을 들고 섬 중앙에 있는 Paps 산에 올라가는 것이었다. 이 시점에서 나는 아직 여행가방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던 상태였다.

밤 10시가 되었을 때, Cauty는 3년전 위커맨을 불태웠던 장소를 다시 방문해보고 싶어했다. 우리는 험한 길을 따라 갔고, 길은 칠흑같은 암흑 속에 묻혀있었다. Gimpo는 주차하면서 차의 헤드라이트를 켜 두었고, 덕분에 그나마 앞은 조금이라도 볼 수 있었다. Cauty와 Drummond는 불타버린 위커맨의 잔해를 뒤져보기 시작했다. 우리의 왼편으로는 버려진 보트 하우스와 바다가 있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대략 15분 후, 우리는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

자정 무렵 우리는 모두 잠을 청하러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앉아서 오늘 하루 일어난 일들을 복기하고 있었다. 대략 30분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Cauty와 Drummond였다. "나와 봐, 지금 하려고 하니까." 두 사람 모두 그 여행가방을 들고 있었다. 어째서 지금인 것인가? "어렸을 때 크리스마스 전날밤이 되면 아침이 언제 올지 도저히 못 기다리곤 했던 것이 기억나?" Drummond의 말이었다. "살다보면 가끔은 그냥 본능적으로 바로 지금 이 때라고 알게 되는 순간들이 있어." Cauty의 말이었다. "최대한 빨리 이 섬을 떠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우리는 차에 탔다. 이제는 비가 상당히 세차게 오고 있었다. "우리 뭐랄까 광대같은걸..." Drummond의 말이었다. "그래, 쇼 비즈니스 셀럽들처럼 말이지." Cauty의 말이었다. Gimpo는 그저 운전을 하고 있었지만, 여행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우리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점심 무렵만 해도 Drummond는 Cauty가 비행기 문을 열고 50만 파운드를 그냥 바다에 던져버릴 수도 있다고 농담을 했었다. 이제는 그런 농담 같은 건 없었다. "그냥, 지금 이 때가 더 괜찮은 느낌이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에 이렇게 밖으로 나오는 게." 푸른 바람막이를 입은 Drummond가 말했다.

우리는 보트하우스에 도착했고, Cauty와 Drummond는 여행가방을 꺼내 건물 앞에 두었다. 건물 내부 바닥은 그냥 흙이었고, 천장에는 나무로 된 서까래가 있어 거기에 두 개의 밧줄 그네가 달려 있었다. 오른쪽 끝에 있는 방에 간단한 벽난로가 있었다.

Gimpo는 차의 헤드라이트를 켰고 이 빛으로 Cauty와 함께 작업을 할 수 있었다. Gimpo는 건물 뒷 편에서 텐트의 일부처럼 보이는 장대를 가져왔는데, 그 끝에는 삼각형 모양의 천 두 개가 붙어 있었고, 천 하나는 하얀색, 나머지 하나는 파란색처럼 보였지만 어두워서 분명히 보이지 않았다. 그는 여기에 Cauty가 챙겨왔었던 비상용 조명탄 두 개를 묶었다. Cauty는 천 쪼가리 아래에 커다란 알루미늄 담요를 묶었다. Gimpo와 Drummond는 위커맨의 잔해에서 나무로 된 드럼 하나를 찾아냈다. 드럼을 바닥에 두고 장대를 꽂아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에 반짝이는 빛과 깃발이 펄럭이게 해 두었다. 보트하우스 내부에서는 Drummond가 밧줄에 여행가방을 매달고 있었다. 기념 사진을 하나 찍었다. 그리고 밧줄을 풀고 가방을 열었다. 백만 파운드의 진짜 지폐가 생생히 보였고, 본능적으로 심한 죄책감이 느껴졌다. 누구라도, 깨끗한 50파운드 지폐 다발이 정갈하게 묶여 차곡차곡 쌓여 백만 파운드로 가방 안에 놓여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그 누구라도, 이 돈 훔친 돈이며 곧 붙잡혀 수갑이 채워질 운명이라는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Cauty와 Drummond가 자신들이 남긴 재산을 보았을 때 느꼈던 감정이 어쩌면 바로 이 죄책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돈은 하나도 아름답지 않았고, 처음에는 오히려 좀 두려운 느낌마저 들었다. 이 돈으로 무엇을 살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였다. 여기서 지폐 다발 4개만 꺼내면 Chelsea에서 괜찮은 방을 구할 수 있을 것이고, 모든 지폐를 다 가진다면 평생 아무런 일을 하지 않고 그냥 놀면서 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실물 지폐를 보니 그렇게까지는 강렬하게 보이지 않았다. 두려움과 죄책감 이후에 드는 감정은 이 돈을 가지고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이었다. 그냥 서서 보고 있지만 말고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물론, 다른 모든 건강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이 돈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멋지게 포장되어 바닥에 놓인 돈은 '힘'을 상징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힘이라는 것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연약한 것이었다. Cauty는 50파운드 지폐를 두 장 꺼내서, 하나를 Drummond에게 넘겨주고는, 라이터를 켜고, 이 두 장의 지폐에 불을 붙였다. 밖에는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고, 돈은 불태워질 운명이었다. 사실 여기서 돈 만큼 잘 타오를 것이 없었다.

Drummond는 화로의 왼 편에 서서 지폐를 불 속으로 던지고 있었고, Cauty는 화로의 오른 편에 서서 50파운드 지폐를 3~4장씩 꺼내고 있었다. 대략 5분이 지나자 이 둘의 동작은 기계적으로 변했고, 마치 석탄 같은 연료를 불 속에 던지는 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시간이 걸릴 일이었다. "뭐 괜찮아," Cauty가 말했다. "시간 좀 쓰지 뭐. 백만 파운드를 불태우기 위해 한 시간만 낭비해도 되겠습니까? (Drummond가 웃었다)... 사람들은 항상 이렇게 말하고 다니잖아: '그 일을 할 시간이 없어.' 뭐, 나는 이 일을 할 시간 만큼은 분명히 갖고 있으니까."

화로는 상당히 낡고 거친 상태였다. 가끔씩 50파운드 지폐 하나가 틈새에 끼거나 해서 불 속으로 떨어지지 않고 있기도 했다. Cauty는 불쏘시개 하나를 들고 지폐 더미를 좀 더 불 속으로 넣고 있었다. 명백히 아직 불타지 않은 50파운드 지폐 다발을 말이다: 살짝 그슬리고 검은 재가 묻었지만 완벽히 사용 가능한 지폐 다발을. 우리는 위스키 한 병을 갖고 있었고, 한밤중 시내와 멀리 떨어진 Scotland 섬에서 £1,000,000의 지폐를 태우면서 할 만한 것이라고는 위스키를 마시는 것 뿐이라는 듯이 자연스럽게 돌아가며 마시고 있었다. 진정으로 충격적인 일이었다. 거의 필연적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1,000,000의 지폐를 태우는 데에는 대략 2시간이 걸렸다. 나는 지폐가 불타는 광경을 가까이서 자세히 보았고, 모든 것은 진짜였다. 이 현금은 실제로 운영되고 있었던 보안업체에서 나왔으며 우리의 여행 중 단 한번도 바꿔치기 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아마도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같이 시간을 보내 온 내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the K Foundation은 이런 일을 충분히 실제로 할 만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Gimpo와 나만이 돈이 불꽃 속으로 사라져가는 것을 실제로 보는 심경이 어떤지 알 수 있으리라. 오로지 우리 네 명만이 이 행위를 목격했고, 대중에 대한 공개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 이 행위의 '순수성'을 높여주었는지 같은 것은 잘 모르겠고, 의미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때 큰 성공을 거두었던 팝 사기꾼으로서, the K Foundation이 자신의 돈을 비공개로 불태웠다는 사실은 이들이 사람들이 자신을 믿거나 말거나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할 수 있으리라.

이제 중요한 것은 £1,000,000를 불태웠다는 것이 전설이 될지, 아니면 쏟아지는 다른 뉴스들에 금방 묻혀버릴지 일 것이다. "사람들이 이 일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아무도 이해하지 못 할 거야." Cauty의 말이었다. "발생할 충격이 나머지 모든 것을 망쳐버릴 거야. 충격적인 일이 되려고 불태워진 것이 아닌데 말이지. 그저 불이 되려고 했을 뿐인데. 지폐를 불에 태우기 시작했을 때, 내가 깨달은 것이 바로 그것이었어. 일반적인 불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는 일이었지." Drummond가 말했다. "우리가 왜 지폐를 불에 태웠는지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아... '의미'는 사람들이 이 일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있을 뿐이지."

이제는 거의 완전한 어둠이 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빛이라고는 내 테이프 레코더의 빨간색 표시등과 몇 개의 호박색 불꽃 뿐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the K Foundation의 마지막 재산은 비 내리는 Scotland의 어두운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보트하우스의 정문은 진창이었고, Cauty가 세워 둔 깃발은 우리 앞에서 빛나고 있었으며, 알루미늄 담요는 바람 속에서 미친 듯이 펄럭거리고 있었다.

이틀 후, Cauty는 행위가 기록된 모든 비디오 테잎과 사진을 파괴했다. "이 예술 작품은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의 부재에 있는 것이다. 이 행위에 대해 알게 된 사람이 갖는 딜레마... 무엇이 되었든지간에, 그것이 예술 작품을 구성하는 것이다." 갤러리 소유주의 말이었다.

London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the K Foundation의 회계를 담당한 Martin Greene Rayden의 회계사 Lionel Martin을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the K Foundation의 계좌에서 돈이 인출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지만, 그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7일 후, Drummond는 Jura 섬 경찰관 McEwan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일부가 불에 타버린 지폐들이 Jura 섬 해안가로 쓸려 온 것이었다. "상당한 액수입니다만, 혹시 선생님과 무슨 관계가 있는 지폐입니까?"


£1,000,000로 무엇을 살 수 있는가?

르완다 - 810,810명이 먹을 수 있는 식량 키트 2,702개
Diana 공작부인 - 6.25년간의 미용
노숙자 - 68개의 가정이 1년간 거주할 수 있는 London B&B. 또는 12.5 가정이 계속해서 거주할 수 있는 집.
보육 시설 - 1년간 풀타임으로 운영 가능한 565개의 시설
교육 - London 거주 학생 254명을 위한 장학금, 또는 London 바깥에 거주하는 학생 313명을 위한 장학금
건강 - 40건의 장기 이식 수술, 55건의 신장 이식 수술 또는 250건의 고관절 수술
법 및 질서 - 71명의 새로운 순경 고용
Le Manoir aux Quat'Saisons 호텔 - 일품요리 평균 가격 기준, 5,555 번의 식사
축구 - Eric Cantona와 Nike간의 스폰서쉽 계약 2번
[The Observer]지 - 2백만 권 (토요일에 [Guardian]을 구매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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