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и Друг Мой Грузовик by OUII

…и друг мой грузовик(…And My Friend Truck), 혹은 …iDMG는 우크라이나의 포스트-하드코어 밴드입니다. 동유럽권을 넘어, 아마 2000년대 가장 훌륭한 포스트-하드코어 밴드들 중 하나일 것입니다. 특별히, 2007년 앨범 [Ищу Друга](Looking For A Friend)는 상당히 훌륭한 앨범입니다…


https://youtu.be/ljXRnMgUM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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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gruzovik.dp.ua/1054-107510881091108710871077.html

밴드 "Я и Друг Мой Грузовик"(Me and My Friend Truck)은 1997년, 우크라이나의 한 지역에서 진행한 록 페스티벌에서의 단 한번 공연을 위해 임시로 결성된 밴드였습니다. 하지만, 이 "일회용" 프로젝트는 Антон Слепаков(Anton Slepakov, 보컬), Ростиславом Чабаном(Rostislav Chaban, 베이스), 그리고 Владимиром Буселем(Vladimir Busel, 드럼)이라는 세 명의 사람들 사이에 전혀 기대치 못했던 강력한 공명을 불러일으켰으며, 결국 이들은 이 프로젝트를 좀 더 이어나가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첫 번째 데모테이프는 1998년에 완성되었습니다. 첫 뮤직비디오였던 "Колеса"(Wheels)의 영상은 1999년 완성되어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의 음악 채널에서 방영됩니다. 2001년, 밴드는 밴드명과 같은 이름의 앨범 [Ya I Drug Mой Gruzovik]를 발매하고 "Антропология"(Anthropology)라는 이름의 프로젝트에 참여합니다. "Урок"(Lesson)이라는 곡과 "Отто Зандер"(Otto Zander)라는 곡의 뮤직비디오들이 각각 2001년, 2002년에 완성되어 발표됩니다. 그리고, 밴드가 스스로 만든 앨범 [Воланчик]이 어떤 레이블도 통하지 않고 자체제작으로 발매됩니다. Enter라는 채널이 공연 "Ты и Друг Мой Грузовик"(You and My Friend Truck)을 녹화합니다. 밴드는 여러 페스티벌과 공연을 진행하고, 처음으로 유럽 투어를 돌게 됩니다.

2003년, "트럭들"은 드러머 Vladimir Busel과 결별하게 되고, 밴드 이름을 "…и Друг Мой Грузовик"(…and My Friend Truck)로 바꾸게 됩니다. Владимир Нестриженко(Vladimir Nestrizhenko)가 비어있는 드럼 뒷편에 앉게 됩니다. 새로운 라인업으로, 밴드는 M1 채널의 프로그램 "tvій формат"에 출연해 공연하며, 여러 개의 콘서트를 열고 페스티벌에 참여합니다. 2004년 봄, Vladimir Nestrizhenko의 자리에 Юрий Жигарев(Yuri Zhigarev)가 들어옵니다. 밴드의 디스코그라피는 "Deti Picasso"와의 합작 싱글과 새 앨범 [Еще маленький](Still Small)으로 보충되며, "Ганда"(Ganda)라는 곡의 뮤직비디오도 만들어 집니다. …iDMG는 상트 페테르부르그 02TV의 "Кухня"(Kitchen), "Открытого проекта"(Open Project)라는 TV 프로그램 및 기타 여러가지의 녹화에 참여하게 됩니다.

2007년, 밴드는 밴드의 앨범들 중 가장 많은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앨범, [Ищу Друга](Looking For A Friend)를 만들게 됩니다 - "트럭들"은 기존의 미니멀리즘 컨섭에서 한 발짝 멀어져서, 여러 세션 뮤지션들을 초청하여 함께 앨범을 녹음합니다. 음악 자체는 그다지 크게 변하지는 않았고, 여전히 베이스 기타만이 유일한 솔로 악기였지만, 일렉트릭 기타의 등장은 많은 팬들에게 혼란을 불러일으킵니다. 밴드는 새 앨범의 홍보를 위해 세 명의 라인업으로 투어를 돕니다. 2008년이 밝아오기 1주일 전, 밴드는 "День Артиста"(Artist's Day) 행사에서 공연을 진행하였고, 그 자리에서 향후 최소 6개월 이상 이어지게 될, "бессрочном творческом отпуске"(기한이 정해지지 않은 안식년)을 선언합니다.

2008년, 이스라엘의 아방가르드 밴드 Крузенштерн и Пароход(Kruzenshtern & Parahod)와 함께 한 스튜디오 녹음 세션에 기반하여, "Грузовик и Крузенштерн"(Truck and Kruzenshtern) 이라는 이름 하에, EP [Мелех](Melekh)가 발매됩니다. 이 녹음은 2006년 …iDMG의 이스라엘 투어가 끝날 무렵 진행된 녹음이었습니다.

사이드 프로젝트 "НеГрузовики"(Non-Trucks)의 대부분은, "Truck concept"와 정확히는 맞지 않았던 Anton Slepakov의 글들이 차지하게 됩니다. Rostislav Chaban은 동료를 전적으로 지원하기로 결정하였고, Anton Slepakov의 전자음향 실험에 기타와 키보드 연주를 더하는 식으로 도움을 줍니다. 그 둘은 함께 새로운 앨범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2008년 1월, 젊은 드러머 Денис Швец(Denis Shvets)가 나타나, 두 팀에서 모두 활동하게 됩니다. 곧 음향 엔지니어 Олегом Ткачом(Oleg Tkach)가 팀에 합류합니다. 이들의 새 앨범, [НеГрузовики: Не улыбаются](Non-Trucks: Do Not Smile)은 기존의 "Truck" 앨범들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여 사람들을 놀라게 합니다. 밴드는 지금까지의 앨범 중 가장 성숙한, 실존주의적인 앨범을 만들어냅니다. “Non-Trucks”는 베이시스트이자 영상 엔지니어인 Артемом Стретовичем(Artem Stretovich)의 도움을 받아 앨범의 공연 버전을 완성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СтереоЛето"(Stereo-Summer)나 "Гогольfest"(Gogolfest)같은 주요 페스티벌에서의 공연들을 비롯한 단독 공연을 진행하게 됩니다. 동시에, 2008년, "Trucks"는 폴란드에서 공연을 하고, 유럽에서 가장 큰 페스티벌 중 하나인 부다페스트 Sziget 페스티벌에서도 공연합니다.

다음 싱글 앨범은 И Друг Мой Грузовик…(And My Truck Friend…) (그렇습니다, 밴드는 또 다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라는 이름으로 발매된 [Радиостанции](Radiostation) 이었습니다. 논란의 여지가 충분한 가사를 가진 곡이었지만, 몇몇 라디오 채널들이 이 곡을 정기적으로 방송해 주었습니다. 2010년, 이스라엘의 레이블 AurisMedia를 통해, 앨범 [Живот](Belly)가 발매되었습니다 - 2009년 텔 아비브에서의 공연을 담은 라이브 앨범이었습니다. 이 앨범에는 "Папа играет на бас-гитаре"(Dad Plays The Bass Guitar)와 "Радиостанции"(Radiostation) 의 뮤직비디오도 실렸습니다.

2011년, 미니 앨범 [Стилизация Послевкусия](Styling Aftertaste)가 발매되었으며, 곧 이어 Алексея Тараненко(Alexei Taranenko) 감독의 뮤직비디오도 발매되었습니다. "트럭들"은 다시 원래대로의 간단한 형식으로 돌아갑니다 - 베이스, 드럼, 보컬 3인조로.

올해(역주: 2012년), 그 어떤 때 보다도 더 생산적으로, 새로운 곡들이 완성되고 있으며, 일종의 선순환 고리에 올라선 것 같다고 느낍니다. 가장 중요한 곡 중 하나인 [Удобен](Comfortable)은 싱글로 발매될 것이며, Alexei Taranenko가 감독한 환상적인 뮤직비디오도 같이 발매될 것입니다.

(러시아어 위키피디아 및 다른 인터넷 자료를 기반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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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2-hRPu4Gn_E


2018년의 음악들 by OUII

2018년도 괜찮았습니다... 나름 즐겼습니다...

=====================올해의 앨범들=====================

Daughters - You Won't Get What You Want (Ipecac Records)


https://youtu.be/MA4ROGkskbw

몇 년간의 공백기를 깨고 새 앨범을 들고 나온 미국밴드 Daughters 입니다... 예전에는 매스코어(?) 스타일에 기반한 음악을 했던 것 같은데, 스타일을 많이 바꿔서 속도도 느려지고, 리듬도 좀 반복적으로 변하고, 대신 다양한 효과와 전자음을 더하고 분위기를 살렸습니다. 여러모로 Young Widows가 보여주었던 변화가 생각나는 앨범입니다. 불안한 느낌을 주는 음향을 배경으로 메마른듯한 보컬이 뜬금없지만 잘 어울리는 아르페지오/피아노 등등과 어우러져 있는데, 제 취향에 상당히 잘 들어맞습니다. 앨범 전반적으로 밴드가 겪어 온 다양한 경험을 기반으로 공을 들여 만들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엄청나게 새롭다거나 혁신적이라거나 하진 않지만, 여러가지 새로운 음악과 효과들을 나름 잘 소화해서 만든 좋은 노이즈 록 앨범입니다.
여담이지만 Rate your music 에서 엄청난 푸쉬를 받고 갑자기 2018년 앨범 1순위로 올라갔는데, 좋은 앨범은 맞지만 솔직히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째서 갑자기 주목을 엄청나게 받았는지 조금 궁금하긴 합니다.


Gazelle Twin - Pastoral (Anti-Ghost Moon Ray)
스트리밍 :: https://gazelletwin.bandcamp.com/album/pastoral


https://youtu.be/anM7ZcNBoFw

[Unflesh]로 나름대로는 잘 나갔었던 영국의 전자음악가 Gazelle Twin 입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이미지 하나는 정말 잘 뽑는 것 같습니다. 음악 자체는 잘 만들었지만 제 취향은 아니었던 [Unflesh] 때도 프랜시스 베이컨 참고한 것 같은 캐릭터 이미지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Red Imp"라고 하는 이번 캐릭터도 굉장히 마음에 드는 변태적인 이미지입니다. 게다가 이번에는 음악도 마음에 듭니다. 클래식을 공부한 적이 있다고 하던데, 그래서인지 강렬한 비트 위에 리코더 같은 목관악기 소리라던가, 성악스러운 간주부라던가, 하프시코드를 연상시키는 연주라던가 하는 여러가지 재미있는 음향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흔히들 인더스트리얼/포스트-인더스트리얼이라고 부르는 장르를 기반으로 음악을 멋대로 잘 가지고 논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고품질의 좋은 앨범입니다.


Puce Mary - The Drought (PAN)
스트리밍 :: https://puce-mary.bandcamp.com/album/the-drought


https://youtu.be/K248GTJrpA0

덴마크에서 인더스트리얼을 하는 Puce Mary의 신작입니다. 여러가지로 포스트-인더스트리얼이라고 할 수 있는 음악을 합니다. 거의 구상음악이라던가 field recording 음악 수준으로 이런저런 효과음들을 짜집고 거기에 인더스트리얼/파워일렉트로닉스 스러운 노이즈와 불길한 보컬을 섞었습니다. Damien Dubrovnik가 운영하는 Posh Isolation 레이블에서 자주 활동하는 음악가인데,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Damien Dubrovnik와 비슷한 방향을 추구한다는 느낌을 가끔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게는 Puce Mary 쪽이 더 취향에 맞는 것 같습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더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공포스럽기도 하면서 황량한 느낌도 아주 훌륭합니다.. 아무래도 2010년대가 끝나는 이 시점에서는 Whitehouse처럼 폭력과 광기의 극한을 달리는 스타일은 좀 옛스러운 것이 되고, 복잡한 감정과 풍경을 그리는 이런 스타일이 최신 스타일이 되는 것 같습니다. 스피커보다는 이어폰이나 헤드폰으로 볼륨을 크게 하고 들으면 좋습니다.


Nine Inch Nails - Bad Witch (The Null Corporation)
스트리밍 :: https://www.youtube.com/watch?v=EMKnM5WNfk0


https://youtu.be/eeJ_DzRJUI4

아직도 활동하는 NIN의 최신작입니다. 그런데 상당히 괜찮게 나온 앨범입니다. 3연작 EP의 마지막인데, 작업을 조금 더 해서 정규앨범이라고 발매되었습니다. 중간에 재즈풍의 금관악기 연주를 넣을지 말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 결과적으로는 멋지게 잘 뽑힌 것 같습니다. 트렌트 레즈너 성향상 수록곡 전체의 믹싱이나 마스터링 수준은 아주 뛰어나며, 빠른 템포로 치고 들어왔다가 구렁이 담 넘어가듯 재즈 파트로 넘어가며 마지막까지 잘 흐르는 구성도 훌륭합니다. 저는 NIN 앨범을 들을 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항상 지루함 비슷한 감정을 느껴왔었는데, 이번 앨범은 짧아서 그런지, 물 흐르듯 잘 흘러가서 그런지는 몰라도 지루함을 의식하지 않고 잘 들었습니다. 새로운 방향에 대한 고민이 평소 갈고 닦았던 실력과 겹쳐져 좋은 결과물로 나온 앨범인 것 같습니다. 재미있게 듣고 있습니다.



올해의 앨범급은 아니었어도, 역시나 괜찮게 들은 멋진 앨범들도 몇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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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med - Only Love (No Rest Until Ruin)
스트리밍 :: https://thearmed.bandcamp.com/album/only-love


https://youtu.be/JhmBpAlKQxo

디트로이트의 매스코어/노이즈록 밴드 The Armed의 신작입니다. 저는 그라인드코어나 매스코어 장르에 속하는 대부분의 음악들과는 잘 안 맞았는데, 이 분들의 이번 앨범은 제법 괜찮게 들었습니다. 전형적인 느낌으로 소리를 질러대다가도 갑자기 조용하게 읊조린다거나, 구린(?) 전자음향으로 때운다던가 등등 숨 돌릴 틈 없이 달려간다는 느낌을 주면서도 동시에 재미있게 들리는 변화무쌍한 부분들이 꽉 차 있다는 느낌도 받게 되는 앨범입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커버아트처럼, 뭔가 종잡을 수 없지만 자신만의 개성이 확고하게 잡혀 있는 앨범입니다. 뮤직비디오도 재미있네요.


JARS - ДЖРС II (self-release)
스트리밍 :: https://jars.bandcamp.com/album/ii


https://youtu.be/a3VHipq6jdk?t=273

러시아의 포스트-하드코어 밴드 JARS의 신작입니다. 딱히 새로울 건 없는 포스트하드코어 곡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정말 잘 합니다. 연주나, 파워나, 곡의 구성이나, 직구 타입으로 정말 잘 만든 포스트-하드코어 앨범입니다. 라이브 공연에 간다면 정말 신나게 잘 놀 수 있을 것 같은 타입의 음악을 보여줍니다. 한 20년 전쯤에 나왔으면 혁명적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들어도 아주 좋습니다. 새로운 것이 없어도 좋은 것은 좋은 것이니까요.


Himukalt - Come October (Found Remains)
스트리밍 :: https://foundremains.bandcamp.com/album/come-october


http://youtu.be/efmkD1ZV7Vg

Himukalt는 네바다에 거주중인 핀란드 음악가입니다. 하쉬노이즈/파워일렉트로닉스 기반의 음악을 합니다. 좀 "젠체하는" 느낌이 있긴 한데, 리듬감이나 산발적인 강렬함 처럼 지루하지 않게 들을 요소들을 은근히 갖추고 있습니다. 밴드캠프를 찾아보면 비슷한 느낌의 음악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중에서는 가장 잘 들었습니다. 자신만의 느낌을 그려내려 하는 것 같습니다.


Alameda 4 - Czarna Woda (Instant Classic)
스트리밍 :: https://instantclassic.bandcamp.com/album/czarna-woda


http://youtu.be/iXpUCpKm8Q8

멤버 수가 바뀔 때마다 뒤의 숫자가 바뀌는 폴란드 밴드 Alameda의 앨범입니다. 마사키 바토와 미치오 쿠리하라가 있었던 일본의 사이키델릭 밴드 Ghost에 좀 더 강렬함을 부여했다고 설명하면 꽤 잘 설명했다고 할 수 있을, 그런 느낌의 음악을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좀 뻔한 분위기의 음악입니다만, 연주 실력도 출중하고, 반복이 지루하지 않게 느껴지도록 제법 잘 풀어냈습니다. 막상 듣다보면 빠져드는 그런 앨범입니다. 그런데 앨범의 후반부는 정말로 Ghost의 [Hypnotic Underworld]나 [In Stormy Nights]의 수록곡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비슷한 분위기이긴 합니다...


Tropical Fuck Storm - A Laughing Death In Meatspace (Joyful Noise)
스트리밍 :: https://tropicalfstorm.bandcamp.com/album/a-laughing-death-in-meatspace


http://youtu.be/TueUWPhnRJQ

The Drones라는 밴드를 하던 사람을 주축으로 만들어진 호주 노이즈록 밴드의 데뷔 앨범입니다. The Drones는 조금 진지한 분위기의 밴드였지만, Tropical Fuck Storm은 결성때부터 좀 마음대로 막 해보려는 목적의 밴드여서 그런지 앨범의 분위기가 자유로운(?) 편입니다. 좀 옛스러운 스타일의 연주를 보이는 편이고, 가끔 지루해지는 포인트가 있긴 하지만, 잘 나가다가 한계를 살짝 넘어가는 보컬이라던가 "The Future Of History"같은 곡에서 등장하는 전자음악적인 표현이라던가 등등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들입니다. 그리고 몇몇 곡들은 정말로 훌륭한 노이즈 록입니다. "Antimatter Animals"에서의 광적인 여성 보컬을 처음 들었을 때는 정말로 감탄했었습니다.
하지만 앨범 커버는 정말 별로인 것 같습니다...


Black Moth Super Rainbow - Panic Blooms (Rad Cult)
스트리밍 :: https://blackmothsuperrainbow.bandcamp.com/


https://youtu.be/2sM49BfJnYI

여전히 기괴한 이미지와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BMSR의 앨범입니다. 전형적인 BMSR 사이키델릭의 느낌을 주는 또 하나의 앨범이지만, 분절된 리듬파트와 이곳저곳 비어있는 음향이 생각보다 익숙한 분위기 사이에서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이런 방향으로 갈 줄은 예상하지 못했어서 그런지 괜찮게 들었습니다. 이 분들도 [Dandelion Gum] 이후로 10년이 넘은 밴드인데, 아직 건재한 것 같습니다.


GosT - Possessor (Blood Music)
스트리밍 :: https://blood-music.bandcamp.com/album/possessor


http://youtu.be/NjRUjGH3MtI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중2병"스러운 전자음악을 해 왔던 GosT의 앨범입니다. 진지하게 듣자면, 2010년대에 이런 사타니즘 컨셉은 웃기려는 장난이 아니라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들이나 진지하게 고려하는 말도 안 되는 구닥다리 컨셉일 것입니다. 그런데 [Possessor]는 이 컨셉을 겉보기에는 진지하게 제법 잘 이끌어 나가고, 음악도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나름 다양한 방향을 시도합니다. 좀 더 저렴한(?) 버전의 90년대의 미니스트리나 초창기 NIN이 생각나는 EBM을 보여주다가도 갑자기 Depeche Mode스러운 느끼한 신스팝을 하는 등 이것저것 왔다갔다 하는데, 전부 꽤 잘 합니다. 옛날 생각이 나기도 하고, 처음에 기대했던 것 보다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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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th In June by OUII



https://youtu.be/mzKDgMiPt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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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deathinjune.org/wiki/index.php?title=Article:Statement1

이 글은 몇 달 전, 특정 정당들이 제기한 다양한 종류의 고발로 인해 결국 2005년 말 (발매된 지 10년이나 지난 시점이다) Death In June의 앨범 [Rose Clouds Of Holocaust]가 아직 외부의 영향을 쉽게 받을 'Deutsche Jugend'들은 구매할 수 없는, 독일의 금지된 과실 '목록'에 올라가게 된 사건의 원인이었던 법적 기소에 대한 답변으로 작성된 것이다. 아마 당신들 중 몇몇은 관심을 갖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내 생각에 내가 작성한 이 답변은 꽤 논리적인 답변이었던 것 같지만, 이 논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능력을 분명하게 갖춘 어떤 사람들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Heilige,....
Douglas P.

『저는 제 음반의 유통업체인 Tesco Organisation Germany 로부터 최근 연락을 받았으며, 독일 정부의 검열 담당 부서에게 제 음악과 제 밴드 Death In June에 대한 성명서를 제출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난 24년간 Death In June 활동을 해 오면서, 저는 제 음악에 대한 설명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제 스스로 설명을 해버린다면, 제가 만들어 낸 작품들이 평범한 것으로, 태어나기도 전에 죽어버린 사산아로 변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표현과 추상적인 생각과 기타 등등의 자유를 검열하려고 혈안이 된 특정한 사회 구성원의 더러운 욕구에 영합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예술은, 음악이던, 문학이던, 회화던지 간에 상관없이, 자유로운 해석의 대상이 될 최소한의 권리가 있습니다.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이 권리는 모든 예술이 잘못 해석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가끔은 좋은 측면으로 잘못 해석될 수 있지만, 가끔은 안 좋은 측면으로 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소비자, 그리고 잠재적인 소비자에게 '도전'하거나 '맞섬'으로써 잘못 해석될 여지를 갖는 것은 예술이라는 것의 본질적인 특징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몇 가지 사실을 적어보고자 합니다:

Death In June이라는 이름은 제가 1981년에 첫 번째 녹음 세션을 가졌을 때, 동료가 한 말을 잘못 알아들어서 생겨난 이름이었습니다. 이는 정말로 우연하게 잘못 알아들어 생긴 일이었습니다. 저는 몇 년 동안 가졌던 수많은 인터뷰에서 이 사실을 말해왔습니다. Death In June이라는 이름이 특정한 역사적 사건 등등을 가리킨다는 해석은 단순히 재해석일 뿐입니다. 흔히들 하는 해석으로는 이 이름이 1914년 6월 사라예보에서 발생한 페르디난트 대공의 암살 사건을 가리킨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으며, 'Death In June!'이라는 것 말고는 그 어떤 숨겨진 의미 같은 것은 없습니다.

음악을 하기 전까지, 저는 20세기 역사를 전공하던 학생이었습니다. 이는 1992년 [Zillo]지와 한 인터뷰에서도 명확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 인터뷰에서 특정한 부분만을 떼어내서 제가 에른스트 룀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내용이 퍼져 있습니다. 저는 20세기 가장 거대한 비극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을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일으킨 주요 인물 중 하나에 대한 사건과 그의 성격에 대해 사람이 어떻게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에른스트 룀과 마찬가지로 저 또한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관심의 또 다른 이유가 되었으며, 이런 관심으로부터 1986년, 아직 독일이 통일되기 전, 'Brown Book'이라는 노래를 만들게 되었던 것이며, 이 곡에서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Horst Wessel Lied)를 활용한 이유는 나치 돌격대의 동성애 혐오와 그의 성적 파트너의 자살적 파멸을 병치하는 나레이션에 분위기를 더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곡은 1936년의 독일을 연상시키는 곡입니다. 곡의 제목은 전 동독의 공산당 정부가 서독 정부 및 다른 기관에서 계속해서 일을 하고 있던 전 나치당 멤버, 무장친위대 멤버 등등의 목록을 적어 둔 책의 이름에서 따 왔습니다. 여러 가지 모순적인 주제들을 가지고 청자를 도발하여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은 Death In June의 음악에서는 흔한 일입니다.

이 관심사는 1995년 발표된 곡 ;'Rose Clouds Of Holocaust'로 이어졌습니다. 이 곡은 한겨울 및 한여름에 아이슬란드를, 해당 기간에는 사실상 하루 종일동안 어두운 밤 또는 환한 낮이었던 그 장소를 방문했었던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 곡이었습니다. 완전히 낮인 것도 아니었고, 완전히 밤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1989년/1990년 아이슬란드를 방문했을 때 일종의 영적인 깨달음을 경험했었습니다. "Holocaust"라는 단어는 그리스어에서 (일반적으로는 종교 의식에 바쳐지는) "불타버린 제물" 을 뜻하는 단어이며, 아이슬란드는 곳곳이 휴화산과 활화산으로 가득 찬 장소였습니다. 아이슬란드의 화산으로 가득한 풍경은 죽음과 재탄생을 상징하는 홀로코스트를 연상시켰습니다. 이 곡은 제3제국 시절 독일이 행했던 유대인 박해나 유대인 학살, 동성애자 학살, 집시 학살 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곡입니다.

저는 음악가이며, 저 자신을 특정한 정치사상과 관련지을 생각이 없으며 정치적인 주장에 등 떠밀려 들어갈 생각도 없습니다. 1992년 독일의 고스 그룹 Das Ich가 함부르크에서의 크리스마스 페스티벌을 정치적인 목적의 행사로 만들려는 시도를 했을 때, Death In June과 다른 영국 밴드들, 그리고 독일의 Projekt Pitchfork는 이 시도에 반발하여 페스티벌 참가를 취소하였고, 페스티벌은 결국 함부르크 정치 단체들의 행사가 되어버렸습니다. 참가를 취소한 우리들은 우리의 결정을 설명하는 합동 성명서를 제출하였고, 그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인종, 종교, 성 정체성 (아마도 함부르크에서 이와 관련된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을 이유로 가해지는 폭력은 전부 혐오한다고 공표했으며, 취소된 공연은 보훔의 한 클럽에서 하기로 정했습니다. 이 대체 공연은 3일 동안 진행되었고, 크리스마스 페스티벌 티켓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은 원한다면 누구나 와서 Death In June을 비롯한 여러 밴드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기념할 수 있었습니다. 3일 공연의 티켓은 전부 매진되었습니다. 함부르크에서 있을 예정이었던 Dark Xmas 페스티벌은 매진되지 못했으며, 페스티벌에 남아있는 고스 밴드들 사이에서 누가 헤드라이너가 될 것이냐라는 주제로 발생한 정치적인 의견 불일치로 인해 산산조각 났습니다! 고스록의 '록 스타' Das Ich는 이 사건 이후로 지금까지도 엄청난 분노를 표출하고 있습니다. 음악 산업은 질투와 시기심으로 가득 차 있으며 저는 그 현장에서 다소 떨어진 거리에 있고자 노력합니다.

Death In June은 언제나 상징과 상징의 힘이라는 주제에 매료되어 있었습니다. [But, What Ends When The Symbols Shatter?]라는 이름을 가진 앨범까지 만들 정도였습니다. '토텐코프 6'은 Death In June (6번째 달입니다!) 이 이용해 오던 간단한 상징이며, 1984년부터는 채찍을 든 손과 6이라는 숫자가 들어간 표식을 Death In June의 상징으로 사용해 오고 있었습니다. 영어에는 'to hold the whiphand'라는 관용적인 표현이 있으며 이는 주도권을 쥔다는 뜻입니다. 1997년, Death In June은 [Take Care And Control]이라는 이름의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모든 것이 이렇게 이어져 있으며, 모든 것이 상징적이고, 표면상으로는 서로 모순적입니다. 이런 상징과 상호모순은 Death In June의 세계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Rose cloulds"라는 두 단어는 "of holocaust"라는 나머지 두 단어와 아름답게 병치되며, 상호모순적인 이미지가 그렇게 완성됩니다. 슬픔의 즐거움을 인식하며 삶이 버려진 거짓으로 가득 차게 되는 것입니다. "Lifebooks"의 가사 중 'The swirling sound of swastikas like rotor blades of thought'는 2명의 아주 친한 친구들이 나누는 대화가 끝나가는 것을 시작하는 부분입니다. 산스크리트어로 태양의 바퀴를 의미하는 그 단어는 악몽으로 가득찬 밤으로의 결말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단어입니다. 새벽이 도착한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스와스티카'라는 단어 자체가 독일 정부의 예술 검열의 원인으로 정당하다면, 저는 저보다 더 유명한 Iggy PopDavid Bowie의 "China Girl"('visions of swastikas in my head'), Primal Scream의 "Swastikas Eyes", 또는 비슷한 여러 다른 음악들에 대해서도 동등한 수준의 검열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04년 6월, 저는 이스라엘의 수도 텔아비브에서 초청을 받아 공연을 진행했습니다. 500명이 넘는 관객들이 열정적으로 Death In June의 공연을 관람하였으며, 제가 무대 위에서 '토텐코프 6' 깃발과 이스라엘 국기를 같이 들고 펄럭이는 사진까지도 남아 있습니다. 저는 이스라엘 잡지 및 라디오 프로그램들과 다수의 인터뷰를 진행했었습니다. Death In June의 LP와 CD들은 이스라엘에서 그 어떠한 제한 없이 유통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티셔츠까지 이스라엘 내 제작/판매가 허용된 상황입니다.

저는 제가 이스라엘에서는 엄청나게 환영받으면서도 독일 정부로부터는 검열 대상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이 역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상황 또한 Death In June의 상호모순적인 특성에 잘 맞는 상황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저는 또한 독일이라는, 현대적인 서양 민주주의 국가의 정부가 예술을 검열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불안한 느낌이 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그리고 제가 독일 정부의 눈에 들어오도록 만든 단체나 개인들을 보면서, 저는 Death In June의 음반들보다도 훨씬 더 독일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아버지는 영국 왕립 공군의 정식 장교셨으며, 2차대전 당시 히틀러의 루프트바페와의 전투에 조종사로 참여하셨으며 2번이나 피탄 당하셨지만 살아남으셨습니다. 아버지의 첫 아내 분께서는 운이 좋지 못하여 런던 대공습때 돌아가셨습니다. 이 첫 아내 분으로부터 제 의붓누나가 태어났었습니다. 아버지의 다른 형제들 3명, 즉 제 삼촌들께서는 전선에서 직접 싸우는 병사들이셨으며 가장 어린 삼촌께서는 영국 왕립 포병대 소속으로 베르겐-벨젠 강제수용소에 처음으로 들어가 불도저를 모시면서 수용소에서 죽은 수용자들을 집단 묘지에 묻으셨습니다. 아버지와 의붓누나, 삼촌들은 모두 좋은 독일인은 죽은 독일인뿐이라는 생각을 늘 하시는 분들이셨습니다.

이런 반독일 문화의 가정에서 자라난 저는, 스스로를 독일과 영국간의 화합을 이끌어내야만 하는 책임감을 가진 세대에 속한다고 언제나 여겨왔습니다. 저는 이런 화합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1945년이 아니라 2005년에 살고 있습니다.

저는 제 음악에 대한 검토가 모든 공식적인 기록들을, 반드시 Tesco Organisation Germany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일 필요는 없지만, 아무튼 공식적인 기록들을 토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비공식적인 기록들과 음반들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책임도 없으며, Death In June과도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Douglas P. (Death In J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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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deathinjune.org/wiki/index.php?title=Article:Statement2

최근, Death In June의 앨범 [Rose Clouds Of Holocaust]를 독일의 금지된 음악, 문학, 기타등등의 목록에 넣으려는 결정에 대한 제작사 및 유통사 Tesco Organisation Germany의 항소가 독일 법정에 회부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항소의 내용에 들어갈 사항으로써, 지난 성명서를 좀 더 보완해서 설명해 줄 수 있겠냐는 부탁을 받았다. 지난번 성명서도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었으며, 내 음반들 또한 전세계적으로 자유롭게 유통되고 있고, 그 중 독일에서만 금지되어 '전세계적으로 자유로운 유통'이 불가능해질 지경에 처해있는 상황에 처해 있으니, 나는 이 새로운 성명서 또한 대중에게 공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관계자 분께, 지난 성명서에서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저는 그 어떤 형태의 예술이라 하더라도 자유로운 해석, 재해석, 잘못된 해석의 대상이 될 한 줌의 권리는 있다고 생각하며, 예술가 본인에 의해 특정한 모습, 방식, 형태로 설명되어 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잘못된 해석에도 한계가 존재하며, 특히 그 잘못된 해석을 하는 주체가 검찰, 비난의 돌을 던지는 사람, 무엇보다도 정부 기관에서 나온 사람일 경우에는 잘못된 해석에 대한 명확한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Holocaust"라는 단어는 영어에서는 종종 무언가 파국적인 것을 묘사하는 단어이며, 마지막이라는 특징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오래 전 그리스어로 "타 버린 제물"을 뜻하는 단어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또한 저는 이미 지난 성명서에서 'Rose Clouds Of Holocaust'라는 곡 제목이 1989년/1990년 한여름 및 한겨울에 화산섬인 아이슬란드를 방문해 일종의 영적인 깨달음/계시를 얻었던 경험에서 우러나온 제목이라는 것을 밝혔었습니다. 수도인 레이캬비크 근처 케플라비크의 블루 라군 온천에서 온천욕을 하며, 저는 저와 아주 가까운 사이인 동료와 함께 삶과 삶에서 벌어지는 실망감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그 영하 17도의 무섭도록 추운 눈보라가 몰아치는 와중에 자연적으로 데워진 따뜻한 물속에서 수영을 하며, 1980년부터 가졌던 특정한 인간관계에 대한 거짓말에 제 인생의 대부분이 끌려 다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특정한 인간관계에서 '13 Years Of Carrion'이나 'Accidental Protege'같은 곡이 나왔으며, 이 곡들 또한 문제가 되고 있는 앨범 [Rose Clouds Of Holocaust]에 실려 있는 곡들입니다. 차디찬 풍경 한 가운데 뜨거워진 블루 라군의 온천수로부터 올라오는 증기, 그 뒤로 펼쳐진 이상한 장밋빛/보랏빛의 하늘은 저에게 'holocaustic'한 기분을 느끼게 했습니다. 아이슬란드 섬의 대부분은 그저 이끼로 덮인 화산암입니다. [Rose Clouds Of Holocaust]는 이 풍경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영어에서는 그렇습니다!

제가 만들었던 가사의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Rose Clouds Of Holocaust'의 나머지 가사들도 여러 가지 것들을 참고해서 쓴 가사들입니다;

"Festivals End As Festivals Must" - 제가 좋아하는 게이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자살 사건 10주기를 맞아 나온 옛 신문기사의 헤드라인에서 따 온 가사입니다.

"From the Hooded Crows of Rome" - 저는 1990년대 초반 로마에서 지냈던 적이 있는데, 이 때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처음으로 봤던 새가 뿔까마귀(Hooded Crow)들이었습니다.

"To The Falcons Of Zagreb" - 저는 자그레브를 종종 방문하곤 하며, 자그레브의 호텔 방 창문에서 대성당의 두 탑 사이로 매들이 날아다니며 사냥하는 모습을 보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Mother Victim Of Jesus lie down in Sydney's dust" - 세계에서 가장 큰 공동묘지인 호주의 루크우드 공동묘지를 거닐다가 본 묘비에 쓰여 있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단도직입적인 방식으로는 가사를 쓰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단어 하나를 가져오고, 저 곳에서 문장 하나를 가져오는 방식으로 작업을 하며, 몇 년 전의 오늘 썼었던 가사에서 일부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저는 그 단어들과 문장들이 하나로 합쳐져 종이에 쓰였을 때에야 겨우 이 가사가 '알맞는' 가사가 되었는지 여부만 알 수 있습니다. 이 가사가 총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가사의 특정한 부분이 어디에서 영감을 받아 나왔는지에 대한 정도입니다.

'Lifebooks'의 가사 또한 마찬가지이며, 이 곡은 런던의 레스터 광장에 있는 한 펍에서 저와 아주 가까운 동료와 오컬트, 마법, 그리고 저희 둘 다와 친한 한 친구 (이 친구는 곧 죽었습니다) 가 이런 어둠의 예술에 너무 심취해서 스스로를 망치고 있는 상황에 대해 나눈 대화에서 비롯된 곡입니다. 이 동료는 가사의 일부분을 저와 함께 쓰기도 했습니다.

"The Swirling Sound Of Swastikas Like Rotor-blades Of Thought Threshing The wheat Out from The Chaff - All this is a Dream,…"

이 대목은 두운법을 적절하게 활용한 문장이며 ( "S,S,S.... Th, Th, Th,...") 저와 동료가 기나긴 오후 시간동안 앉아 오컬트라는 대상에 접근해 보는 것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토론하는 동안 펍의 천장에서 천천히 돌아가던 환기용 팬을 상징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물론, 저는 대신에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The fans in the pub ceiling turned around like propellor blades as we spoke of the advantages and disadvantages of dealing with the Occult'

적어도 저에게는, 두 가지 버전 중 어느 버전이 영어에서 더 멋진 음운을 갖는지 확실해 보입니다!

하지만, 독일에 있는 것이 분명한 다른 사람들은 제가 쓴 이 문구가 무슨 뜻인지 아주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들의 전문성과 재능에 아주 놀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저는 어째서 이 앨범이 지금까지 수만 장이나 팔렸고, 아무런 제한 없이 10여 년 동안이나 자유롭게 전 세계적으로, 심지어 이스라엘에까지, 제가 최근에 공연까지 했었던 그 이스라엘에서조차도 자유롭게 유통되었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혼란스럽습니다. 어째서 이제 와서야 검열의 대상이 되었는지? 이에 대해서는 제 머릿속에는 어떠한 답변도 떠오르지를 않습니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저는 홀로코스트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홀로코스트는 [Rose Clouds Of Holocaust]와는 전혀 다른 경험이며, 전혀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수용소 수감 경험이 있는 그 어떤 사람을 데려오더라도 이 다름을 증언해 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홀로코스트와 [Rose Clouds Of Holocaust]가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그들의 역겨운 비유에 대한 처벌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진심을 담아, Douglas P. (DEATH IN J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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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deathinjune.org/wiki/index.php?title=Article:Statement3

최근 독일 정부에서 Death In June의 앨범 [Rose Clouds Of Holocaust]를 독일의 '금지된 과실' 리스트, 검열/금지된 작품의 리스트에 포함하기로 내린 결정은 보다 더 큰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나는 [Rose Clouds Of Holocaust]의 제작과 유통을 담당하는 회사인 Tesco Organisation Germany의 Joachim Kohl과 Klaus Hilger로부터, 정부의 결정에 대한 항소가 시작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당장에야 이 검열이 Death In June이라는 한 밴드와 이 밴드의 앨범 하나에 대해서만 이루어졌지만, Death In June과 같은 장르에 속하는 예술가들에겐, 이 검열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이 정부 차원의 금지가 성공하여 지속된다면, 네오포크/포스트 인더스트리얼/당신이 뭐라고 부르던 간에 어떤 특징을 공유한다고 생각하는 이 '씬'의 어떤 밴드가 다음 검열의 대상이 될지 걱정해야 할 것이다;

Der Blutharsch, :Of The Wand And The Moon:, Orplid, Blood Axis, Westwind, forseti, Sol Invictus, Dies Natalis, HERR, Werkraum, Sonne Hagel, Darkwood, Ostara, Fire+Ice,..........?

이 밴드 리스트는 원한다면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으며, 특별히 누군가가 유럽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누군가가 아마도 리스트를 직접 이어갈 것이다. 이 검열은 단순히 한 도시에서 벌어질 한 번의 공연에 대한 금지가 아니며, 위협적인 전화나 클럽에서 어울리는 폭력적인 사람들 또는 한 표라도 더 얻으려고 발악하는 정치인 정도의 의견으로 인해 발생한 금지가 아니다. 이 검열은 국가 단위에서 행해진 검열이고, 한때 악의에 영향을 받았던 유럽 국가의 정부 차원에서 시행된 검열이다.

이 검열이야말로, 정말로 "Strange Days for YOU, Me and Germany!"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독일에서 벌어질 항소에 직접적으로 참석하지는 않을 예정이지만, Joachim Kohl과 Klaus Hilger가 관련된 업무를 대행하고 최전선에 서 줄 것이다 - 걱정하고 있는 모두를 위해서!

비록 내가 마음속으로는, 그리고 법적인 효력을 가질 성명서로써는 그들을 지지하고 있지만, 경제적인 지원 또한 필요하며, 처음으로 법정에 항소하는 아주 중요한 과정에 필요한 돈이 최대 10,000 유로까지 필요할 수 있다. 최종적으로는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할 것이다.

비록 이 비용만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지만, 경험과 역량이 충분하다고 판단한 Greater Calling for a Demonstration of Solidarity에 연락을 취해 본 결과, Fighting Fund Festival을 개최하여 비슷한 장르에 해당하는 밴드들의 공연을 유치하고, 그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한 수익금을 이 항소 과정에 보탤 수 있다는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이 페스티벌은 당연히 독일에서 진행될 것이고, 비록 최근 한동안은 공연을 쉬고 있었지만 나 또한 이제는 다시 무대로 나와 공연을 해야 할 것 같다.

유럽의 아들들이 과연 이 '징병 요청'에 응답할 것인가 -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무기라곤 고작 어쿠스틱 기타와 드럼 스틱 몇 개 정도일 뿐이더라도?

아니라면, 이 모든 세월이 지난 후엔, 결국은 "페스티벌은 끝난다 - 그래야만 한다"로 마무리 될 것인가?

Heilige Kampf! Douglas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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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QG3h1sOShqA


whitehouse: bird seed by OUII



https://youtu.be/5WZWvQFfs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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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usanlawly.freeuk.com/textfiles/wbinterview03.htm

2007. 02

Judith Howard> 흠, 어떤 의미에서 새로운 음향으로의 길이 열렸다고 보는 것인지, 예를 들어줄 수 있겠는가?

William Bennett> 이전 앨범들에 비해선 어쿠스틱 악기들의 비중이 확실히 많아졌다고 할 수 있겠다 - 이는 사실 전자음악 밴드라고 (심지어 홈페이지의 FAQ란에도 써 두었다!) 설명을 하고 있는 우리와는 좀 모순되는 특징이긴 한데, 하지만, 내가 가끔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음악의 수단 자체에 대해 독선적인 입장을 취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옛 사운드를 사용하는 밴드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것에 과하게 집착한 적도 없었고. [Asceticists 2006]을 만들 때 세웠던 단 한 가지 규칙은 처음 구상했었던 컨셉과도 잘 부합하는 것이었다. 이 규칙은 사실 우리가 항상 가져 왔었던 규칙으로, 전통적인 방식, 이미 잘 정리된 방법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는 규칙이다. 예를 들자면, 퍼커션이라던가 멜로디라던가 하는 요소를 사용해야 할 때,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을 것으로 예상하는 방식으로만 사용하려고 해 왔었다.

Judith Howard> 당신이 예전에 언급했었던 '금욕주의(asceticism)'의 개념과도 관련이 있는 것인가?

William Bennett> 그렇다, 아주 그렇다. 내가 생각하는 미니멀리즘 예술과도 연결되어 있다. 나에게 있어, 감정적인 흥분은 부정이라는 것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일부러 안 한다는 것에서 나온다. 이 개념은 굉장히 강력해서 모든 감정을 압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간단하게 들 수 있는 예시로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 [화양연화]가 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들 사이에는 단순한 키스신조차도 없지만, 둘 사이의 강렬한 긴장감은 영화 전반에 뚜렷하게 만연해있다. 물론, 부정할 만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영역이라면 어떤 영역이던지 간에 이 개념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부정을 하는 것 자체가 애초에 아주 어려운 일이지만.

Judith Howard> 라스 폰 트리에 및 다른 감독들의 도그마 95 영화들도 예시로 볼 수 있을까?

William Bennett> 아주 훌륭한 예시다. 사실, 도그마 영화로 여겨지지는 않지만, 라스 폰 트리에의 [다섯 가지 장애물]은 아주 훌륭해서 도덕적이라고까지 평할 수 있는, '금욕주의자' 원리의 잠재력이 충만한 영화다. 이 잠재력을 느끼게 된다면 당신이 무엇을, 어느 정도까지나 진정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Judith Howard> 내가 꼭 묻고 싶었던 주제는, 최근 몇 년 동안 발생했던, 부틀렉과 해적판에 대한 당신의 상당히 강경한 입장에 대한 논란이다. 이에 대해 좀 더 명확하게 설명해 줄 수 있겠는가?

William Bennett> 기본적으로, 무슨 말이 나오든지간에 상관없이, 나에게 부틀렉/해적판 이슈는 경제적인 문제나 예술가의 자주성에 대한 저작권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큰 레이블 회사의 일부가 아니며, 아주 작은 규모의 단체이기 때문에, 우리의 활동에 대한 모든 것이, 자주 들어오는 친절한 협업 문의들보다는, 우리의 레이블인 Susan Lawly를 통해서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Susan Lawly를 통해서 진행해야만 꾸준한 품질로 앨범을 제작할 수 있으며, 원래 의도했던 바를 가장 확실히 표현할 수 있다. 이 정도의 통일성은 사실 대다수의 레이블이나 예술가들이 갖추지 못한 특징이며, 내 생각에 업계의 사람들은 대체로 이 통일성의 가치를 이해해 줄 것으로 믿는다. Christoph Heemann(H.N.A.S. 멤버)이 제작한, 끔찍할 정도로 저급한 품질의 Whitehouse 해적판을 보았을 때 나는 정말로 심하게 화가 났다. 우리가 표현하고자 했던 바를 완전히 무시한 해적판이었기에. 나는 그 해적판에서 그냥 손쉽게 몇푼 벌어보자는 값싼 의도 이상의 것을 읽어낼 수 없었다. Ron Lessard(Emil Beaulieau)가 최근 이런 문제에 대해 거만한 의견을 보였다고 들었는데, 뭐 스스로 나름의 의견을 갖는 것, 자기 음악의 부틀렉을 만드는 걸 독려하는 것이야 개인의 권리겠지만, 그 의견은, 나에겐 전혀 아니다. 나는 우리가 하는 일을 열정적으로 신뢰하고 있으며, 우리가 의도한 바로 그대로 결과물이 나오길 바란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작품은 Susan Lawly를 통해서 만들어져야만 한다.

Judith Howard> 마지막 질문으로, 당신은 요새 발표나 세미나를 꽤 자주 하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이 활동들이 작품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해 말해줄 수 있겠는가?

William Bennett> 개인적으로는 발표하는 것 자체를 즐기며, 자연스럽게 하고 있다. 또한 나는 많은 사람들이 '미친 음악'들이 인간에게서 나오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미친 음악 또한 예술의 한 영역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받아들이길 독려하지만, 그 미친 음악들 뒤의 아이디어와 동기, 논리 전개를 좀 더 명확한 구조로 설명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미스테리에서 나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언제나 좀 두려워해왔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의 작품을 좀 더 명확히 설명하고, 토론하고, 의견과 관심사를 나누는 것은 몇 가지 측면에서는 분명히 좋은 일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음악의 마법은 잃지 않은 채로 음악적 경험을 더 강렬하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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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usanlawly.freeuk.com/textfiles/wbinterview04.htm

2006. 10

Carl Holmes> 새 앨범의 이름은 [Asceticists 2006] 이었다. 스스로를 "금욕주의자"(Asceticist)로 본다는 의미인가?

William Bennett> 어떤 측면에서는 그렇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라기보다는 예술에 대한 태도에 관련된 의미로. 내가 생각하는 금욕주의는, 미니멀리즘에 대한 나만의 정의에 기반하고 있다: 무언가를 하지 않음으로써 단순한 선언을 넘어서는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 할 수 있는 것을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나는 펑크나 초기 전자음악에서 많은 밴드들이 그런 미니멀리즘 스타일의 음악을 했었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이는 그들의 선택이라기보다는 그들이 록 스타덤에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악기를 제대로 연주할 줄 몰랐었으니까. 뭐 그 자체로는 아무 문제도 없지만, 예술에 있어서의 금욕주의를 생각해 보자면, 금욕주의란 우리가 일반적인 음악을 만들 줄 알지만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할 수 있는 능력은 갖추었지만 그 능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Carl Holmes> 자진해서 미니멀리즘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것인가?

William Bennett> 그러하다. 달리 선택지가 없어 어쩔 수 없이 행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자의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이해가 되는가?

Carl Holmes> 종교적인 영역에서, 무언가를 일부러 금지함으로써 보다 더 높은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법과 비슷한 것 같다.

William Bennett> 정확하다. 좋은 비유라고 생각한다. 우리 멤버들이 동굴 속에서 은거한다거나 하고 있지는 않지만, 기본적인 원리는 같다.

Carl Holmes> 스스로 자청해서 빈곤함을 경험하는 것?

William Bennett> 그렇다. 이번 앨범에 대해서라면, 예술에 대한 태도라는 측면에서. 하지만, 당연히 이 비유를 인생의 어떤 측면에라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섹스라던가, 음식이라던가, 술이라던가 등등 말이다.

Carl Holmes> 스스로가 부여한 것이든 외부의 압력에 의한 것이든, '제한'이라는 것이 보다 더 거대한 표현의 자유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는가?

William Bennett> 언급했던 금욕주의적인 방식으로 작용하기만 한다면야, 그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관찰해 온 바로는 대부분의 예술은 그런 식으로 진행되지 않는 것 같았다. 어떤 영역에서건, 사람들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을 왜 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질문해 봐야 한다. 내가 느꼈던 것은, 특별히 음악이라는 영역에서는, 사람들은 어떤 '숨은 의도'를 갖고 작품을 만들고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음악을 시작한 후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 경험이 쌓이고 악기를 다룰 줄 알게 되며 노래도 부를 줄 알게 되고 예산도 풍족해져 좀 더 나은 스튜디오에 갈 수 있게 되면, 엄청나게 구린 곡들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 때 그 사람들의 마음속에 숨어 있던 의도를 보게 되는 것이다.

Carl Holmes> Whitehouse의 음악은 풍성하고 복잡한, 아주 정교하게 짜여진 패키지의 한 부분 같다.

William Bennett> 맞는 말이다. Whitehouse의 음악은 정교하게 짜여져 있으며 이를 통해 청자는 음악 그 자체보다는 청자 자신을 즐기게 된다. 우리의 음악은 음악보다는 청자나 관중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몇몇 사람들은 이를 강렬하게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종류의 음악들, 문학들, 영화들도 마찬가지다. 몇몇 사람들은 폭발과 욕설, 약간의 섹스 같은 것을 그저 그냥 보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본능적이고 대중적이어도 딱히 상관 없다. 내 관심을 끄는 것은 작품이 다른, 보다 더 다양한 레벨에서도 작용하게 되는 순간들이다. 그 때야말로 음악에서 진정한 희열을 얻을 수 있는 순간이다.

Carl Holmes> 누군가에게 당신들의 공연을 보러 갈 예정이 있냐고 물어보면 보통 대답으로 "그런 파시스트 쓰레기들을 볼 시간 같은 건 없어!" 같은 대답을 듣곤 한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William Bennett> 단어의 정의를 따르자면 나나 Philip Best를 파시스트라고 부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만드는 음악은 개인에 대한 음악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특정한 사회적 그룹이나, 사회학이나, 정치적인 의제에 대해 말하지 않으며 세계나 사회를 바꾸려는 시도도 하지 않고 있다. 모든 것이 전부 감정에 대한 것이며, 완전히 개인적인 내용들이다. 그러니 파시스트라는 단어의 정의를 생각해 보면, 우리는 파시스트라고 할 수가 없다. 게다가, 더 나아가서, 우리를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은 우리가 사실은 지구상에서 가장 물러터진 자유주의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정말로, 단어 자체의 의미를 충실하게 만족하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확히 자유주의자다. 이런 사실을 볼 생각이 없는 좁은 시야의 사람들과는 논쟁을 시작하고 싶지 않다. 조금이라도 도발적인 음악을 하다 보면 청자들로부터 다양한 반응을 얻게 되는데, 이 반응들에는 사실 청자가 본 것에 대한 내용보다는 청자 자신에 대한 내용이 더 많이 들어있다. 누군가가 파시스트 타령같은 코멘트를 달며 키보드를 두들긴 것을 볼 때마다, 나는, 그 사람들이 얼마나,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지한 사람들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어떠한 진지한 생각 없이, 자신이 말하는 단어가 무슨 의미인지 찰나의 고려조차 없이, 정의에 대한 이해조차도 없이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단어의 뜻도 모른 채로 단어를 남발하는지 아는가? 잠시 멈추고 이 사람들에게 단어의 의미를 물어보면 그들 중 단 한 명도 제대로 된 답을 하지 못할 것이다. 파시스트 같은 딱지를 붙이는 것은 빠르고 쉬운 일이지만, 딱지를 붙이는 사람의 내면에 있는 무지함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그런 일을 항상 하고 있다.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주제에 대한 각자만의 다양한 터부가 있다. 나는 사실 '사회적 통념'이라는 개념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데, 이 '통념'이라는 것이 얼마나 진실과 정반대일 수 있느냐에 대해서이다. 사회적 통념은, 보통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해서 직접 내린 결론보다는, 삶을 살아가며 사회적으로 획득한 믿음을 반영하고 있다.

Carl Holmes> 사회적인 통념은 히틀러를 터부시하지만 다른 시간대의 비슷한 인물은, 예를 들자면 칭기즈 칸 같은 인물은, 뭐랄까 만화 등장인물 정도로 여기는 것 같다.

William Bennett> 최근 TV에 나온 좋은 예가 있다. 동물 권리를 위해 활동하는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그 남자는 뒤에서는 다른 사람의 할머니의 무덤을 파헤치고 다니고 있었다. 재미있는 건 그 남자가 다른 사람의 할머니의 무덤을 파헤치고 다녔다는 이유로 7년형을 선고받은 것이다. 아니, 이미 죽어버린 사람의 무덤인데 말이다. 감옥에서 7년간이나? 그런데, 이 프로그램 직후에 나온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기독교 고고학자였던 Tony Robinson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 사람은 중세시대에 영국에 묻힌 사람들의 무덤을 파헤치고 다니고 있었다. 발굴한 다음 "흠 이 무덤의 주인은 여자였고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설명하고 있었다. 자, 첫 번째 남자와 두 번째 남자 사이의 차이점을 말해 보라, 무덤의 주인이 죽은 시점이 현재냐 아니면 400~500년전이냐 말고 다른 부분이 있기는 한지?

Carl Holmes> 아마 할머니의 친척들이 아직 살아 있어서 그 사람들이 고소한 것이 아닐까 싶은데?

William Bennett> 그게 무엇이 중요한가? 만약 지난주에 한 고아가 죽어서 묻혔다고 해서 우리가 아무런 사법적인 처벌 없이 그 고아의 무덤을 파헤칠 수 있는가? 이 예시에는 극단적으로 다른 두 가지의 반응이 있다. 둘 다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데, 한 남자는 Channel 4 방송국에서 돈을 받고 있고, 다른 남자는 7년동안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

Carl Holmes> 보다 더 최근에 발생한 일이었기 때문이 반발이 생긴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가?

William Bennett> 딱히 그렇지 않다. 완전히 똑같은 행위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무덤을 파헤치면 안 된다는 터부는 단순히 무덤에 묻힌 사람의 친척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 아니다. 다른 온갖 이유들로 인해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꺼내면 안 된다는 터부가 생긴 것이고, 이 터부에선 묻힌 사람이 19세기에 묻힌 사람이냐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냥 그러면 안 되는 일이다. 음악을 예로 들자면, 80년대 초반에는 사람의 다리뼈를 가지고 악기처럼 연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실제로 요크셔에 사는 한 남자가 자기 인더스트리얼 밴드 멤버들과 함께 교회의 한 무덤을 파헤치다가 잡혔었는데, 그들은 곧바로 체포되어 실제로 감옥에서 좀 살았다. 무덤을 도굴하는 것은 법전에 범죄라고 적혀 있는 일이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Tony Robinson은 해도 되었던 것이다. 다시, 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으로 돌아왔다.

Carl Holmes> 아까 당신은 자유주의자라는 개념에 대한 당신만의 정의가 있다고 말했었다. 그 정의에 대해 말해줄 수 있겠는가?

William Bennett> 당신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 이나 할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허락한 일'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는 부분이지만), 그리고 사회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일' 사이에는 의미의 차이가 있다. 흔히 혼동하곤 하는 차이이다. 사람들은 이 두개의 서로 다른 개념을 섞어,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 처럼 잘못 생각하고는 한다. 자유주의에 대해 말하자면, 내가 말하는 자유주의는,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믿음이 아니다. 그냥 내가 내 인생을 사는 데에 있어 가치를 어디에 둘 것이냐에 대한 생각이다. 나는 내 행동에 대해 사과하지 않으려 한다. 왜냐면, 나 자신의 열정을 담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것이 나에게 있어서의 자유주의다. 동료의 압박, 사회의 압박이라는 것은 정말 거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결국에는 타인을 만족시키고,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사회에 소속되기 위한 행동을 하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당신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다. "그런 짓은 하면 안 되지, 그런 패거리랑 같이 다니면 안 된다구" 같은 소리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런식으로 말하고 싶지 않다. 특정한 패거리나 사회에 대해 평가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인생을 어떻게 살고자 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생각하는 자유주의의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기에.

Carl Holmes> [The Extreme Music From…] 시리즈. 아프리카, 러시아, 그리고 이제 곧 중국 버전도 나올 예정이다. 가난이 보다 더 강렬하고 가치 있는 예술을 낳는다는 뻔한 소리가 사실이라고 생각하는가?

William Bennett> 음악을 만드는 데 무엇을 사용하냐 따위보다 음악 자체가 훨씬 중요하다. 음악 잡지를 보면 온통 PC냐 Mac이냐, 아날로그냐 디지털이냐, 바이닐이냐 CD냐, 증기기관이냐 전기냐 따위를 가지고 엄청나게 많은 지면을 할애해 논의하고 있다. 음악 제작방식에 있어 아주 미묘한 차이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아이티에 가서 그 나라 사람들이 만드는 음악을 공부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도 음악을 만들 수 있다. 손에 잡히는 돌멩이, 자갈, 망치, 손톱, 톱, 나무토막 따위로도 말이다. 그들은 그렇게 가장 강렬하고 'extreme'한 음악을 만들 수 있다… 'extreme'이라는 단어 자체에는 딱히 의미가 없다. 마치 'very'라는 단어가 단어 자체의 뜻을 갖고 있지는 않은 것처럼. 하지만 'extreme'이라는 단어는 강렬함의 정도, 감정적 격렬함의 정도에서 의미를 갖는다. 그들은, 우리가 컴퓨터와 PA 시스템과 랩탑, 디지털 기술을 가지고 만드는 수 많은 음악들이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게 정신을 강타하는 음악을 만들 수 있다. 배울 점이 많은 부분이다. 이 부분이 내가 금욕주의적인 노선을 택하려고 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어떻게 만드냐 같은 것 보다는 무엇을 만들었는가가 중요하다. 중요한 질문은 "그래서 결과로 나온 음악이 좋은가 아닌가?" 이다. 나는, 상당히 많은 경우에, '기술'이 일종의 장벽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PC가 낫냐 Mac이 낫냐, Cubase가 낫냐 Logic이 낫냐 같은 주제의 토론에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한다. 그런 넌센스에 너무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있다. 음향을 통해 자신을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해 집중해야 하는데 말이다. 또 다른 흥미로운 예제로 버마를 들 수 있는데, 버마에는 일종의 '트랜스 음악'이 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트랜스는 테크노 장르 중 하나가 아니라 말 그대로 트랜스 상태를 일으키는 음악을 말한다. 주로 퍼커션이 들어가지만 꼭 퍼커션이 있을 필요는 없는, 강렬한 리듬과 음향으로 청자를 깊은 트랜스 상태에 빠지게 하는 음악. 버마 사람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음악을 들으며 트랜스 상태에 빠진다. 음향을 통해 진정으로 깊은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 음악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여부는 상관없다. 나는 정말 좋아한다. 그들의 음악은 확실하게 먹히고 있으며, 그게 중요한 것이고, 그들은 딱히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아무것도 없는채로 그렇게 엄청난 음악을 만들고 있으며, 음악에 대한 이 교훈이 사실이라면, 다른 대부분의 것들에도 똑같은 교훈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가난이라는 주제는 흥미로운 주제다. 핸드폰, 이메일, 기타등등이 없으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다는 망상에 빠져 사는 현대인들에게서 그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던 것들을 빼앗는다면 말이다, 아까 음악을 통해 얻은 교훈 속에서 잘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그 병신같은 것들이 없을 때 우리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Carl Holmes> 당신이 하고 있는 것, 그리고 하려고 하는 것에 대해 시간을 들여 이해하려 하는 사람들이 받을 수 있는 '보상'은 무엇인가? 예를 들자면,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William Bennett> 나는 사람들을 설득해서 뭔가를 하게 하려는 생각은 없다. 하지만 나 자신의 경험에서 얻은 지식을 말하자면, 방심하고 있는 사람에게 인생이 통째로 뒤바뀌는 경험이 찾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이야말로 정말 재미있는 부분이다. 가장 기대를 안 하고 있는 사람에게 그런 경험이 찾아가는 것이다. 갑자기, 예를 들자면 자동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한다거나 다리가 부러지는 일을 당한다거나 하는 것 같은 사건이 들이닥치고, 이 사건이 발생하는 바로 그 순간, 그 나노초의 순간에, 모든 것이 느려지면서 앞으로의 삶이 이전과 같아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이제는 도저히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다리가 부러지는 그 순간 이제는 다리가 부러지기 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예시들을 보다 보면 이런 경험들이 안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가끔, 삶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야말로 이런 경험이다. 좀 더 재미없는 예시를 하나 더 들어보겠다. 나에게 일어났던 최고의 일들 중 하나는, 내가 빈집털이를 당했던 일이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정말 좆같이 끔찍한 일이지만 말이다. 빈집털이를 당하면 그 좀도둑놈들을 전부 죽이고 싶어진다. 그 도둑놈들은 내가 가진 모든것을 다 가져갔다, 정말로 모든 것을 말이다. 비디오 장비, 음반들, 콜렉션 전부, 스테레오 시스템, 그 전부를. 하지만 이 경험이야말로 내 인생에서 일어난 최고의 경험이었다. 나는 빈집털이를 당한 그 순간 갑자기 깨달았다. (종교적이라거나 영적인 경험이 아니라는 것을 미리 말하고 싶다. 그런 것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더 이상 내가 소유하고 있는 물건들에 얽매여 있을 필요가 없어진 것이었다. 이제는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도둑 사건이 일어나기 1달 전 바르셀로나에서 공연을 했었는데, 바르셀로나는 정말 멋진 장소였었다. 좆 까라, 씨발. 바르셀로나로 당장 떠날거다. 좋아, 돈도 있고, 아무 짐도 없으니, 당장 공항으로 가서 가장 빠른 비행기를 타고 바르셀로나로 갈 거다. 그리고 나는 정말로 그렇게 했다. 그리고 이 결정이야말로 내 인생에서 가장 멋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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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01

Judith Howard> 사람들이 당신들을 비평하면서 받아들이는 것, 혹은 거부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아니면 무시하려고 하는 편인가?

Philip Best> 나는 우리 음악에 대한 모든 종류의 반응을 즐긴다.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거나 상관 없이 말이다. 사실, 좀 변태적이긴 하지만, 나는 우리 음악에 대해 비명을 질러대며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말하는 타입의 반응들을… 가장 좋아하곤 한다. 하지만, 당신도 알고 있겠지만, 음악이라던가 가사라던가 공연에 대한 비평과 반응들은, 호의적이거나 그 반대이거나 둘 다, Whitehouse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이 밴드의 작업에서 필수적인 부분이다. 나는 특별히, Whitehouse에 대해 단적으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는 사람들, 또는 의혹의 시선을 던지면서도 한번 더 탐험해 볼 의지를 갖고 있는 그런 사람들의 반응을 즐긴다.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야말로 중요한 부류이다. 청자들이 Whitehouse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한 발자국 더 내딛어 보려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최고다…

William Bennett> 맞다, 나도 Philip의 말에 상당히 동의한다 - 우리가 청자들로부터 유도하는 반응이야말로 우리의 예술에 있어 의심의 여지 없이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Whitehouse는 강렬한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설계되었으며, 이를 통해 일종의 극단적인 깨달음이 된다 -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문제가 많아 보이는, 영혼을 거울처럼 들여다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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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02

Judith Howard> [Cruise] 앨범에 대해 사람들이 보여준 반응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싶다. 다양한 반응이 나온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William Bennett> 두 가지 점을 짚고 싶다: 첫 번째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자주 과소평가하곤 하는 부분은, Whitehouse는 청중의 반응이 정말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예술이라는 것이다. 이 말이 우리가 음악을 만드는 과정과 음악 자체를 소홀히 생각한다는 뜻은 아니다 -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종종 세세한 부분에 심할 정도로 집착하기도 한다. 가끔은 쓰잘데기없는 완벽주의를 추구하기도 하고. 하지만, 정말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측면인데, 음악이라는 것은 사람들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는 매체이다. 따라서 음악은 궁극적으로는 사람들의 반응을 이끌어낸다는 개념까지 포괄한 단어이며, 당신이 언급했던 것처럼, '반응'들도 전체적인 과정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구성한다. 나는 [Cruise] 앨범을 성공적이었다고 판단하는데, 그 이유는 [Cruise] 앨범이 사람들의 반응을 극과 극으로 편향시킬 수 있는 앨범이기 때문이다. 편향이라는 현상은 좋은 것이다. 이를 통해서 사람들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의 편린을 보인다. 논의의 대상이 되는 작품 자체보다도, 그 작품에 대해 논의하는 사람들에 대한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이 드러남의 과정이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이 될 수 있을 것이며, 다른 이들에게는 거울에 비친 적을 보여주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Judith Howard> 그러하다면, [Cruise]가 그 '편향'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William Bennett> 흠, 재미있는 질문인데, 뭐 100% 확신할 수 있는 부분은 없겠지만, 'Princess Disease'의 음악적으로 전혀 전형적이지 않은 접근법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앨범의 중심에서 또아리를 틀고 있는 'Public' 때문이라거나, 'A Cunt Like You'처럼 짓궃은 마무리라던가, 앨범 제목이 암시하는 동성애적인 느낌이라던지, 가사 전반의 주제나 대상 때문이라던지.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주장하고 싶은 것은, 이 모든 논의는 사실 앨범이 나오고 사람들이 다 들어 본 이후의 분석이라는 것이다. 앨범을 만들 때 저런 생각들을 한 건 전혀 아니었으며, 나는 이런 앨범들을 평생 만들어 오고 있고, 앨범을 만들 때마다 제대로 하기 위해 엄청나게 고심한다.

Judith Howard> 전반적으로 [Cruise]는 다른 Whitehouse 앨범들 보다 더 어두운 것 같다.

William Bennett> 맞다, 나는 요새 금욕주의적인 사고방식에 심취해 있다. 미니멀리즘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당신이 가지고 있고 즐기고 있는 것들을 의도적으로 거부하거나 지워 버리는 것에, 스스로를 부정하고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들을 의도적으로 제거하는 것에 있다 - 허무주의의 진정한 미학은 그 곳에 있다. 이런 기준이 없는 미니멀리즘은 그냥 아무것도 아닌, 쓰잘데기없는 무능에 불과하며, 여기저기에 널려 있다.

Judith Howard> 언론의 반응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William Bennett> 우리는 단 한 번도 언론의 주목을 받으러 노력했던 적이 없었다. 반응을 보여 준 언론들에게는 진심으로 감사한다. 보통 우리를 적극적으로 지지해주는 몇몇 사람들이 리뷰를 작성해 준다. 특정한 잡지가 우리를 리뷰하지 않기로 결정한다면, 그거야 그들의 당연한 권리이다. 몇몇 잡지들이 우리나 Susan Lawly 레이블의 다른 음반들을 의식적으로 전부 리뷰하지 않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우리의 존재를 '입증'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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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Gareth Birckbeck> 공연을 할 때라던지 아니면 녹음을 할 때, 음악의 순수성을 추구하는가 - 당신의 음악이 카타르시스 보다는 긍정적인 경험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둘 다 섞여 있다고 보는가?

William Bennett> 개인적으로는 우리의 음악이 카타르시스라고 여기지 않는다 - 긍정적이라, 맞다, 하지만 단순한 '긍정적인 경험' 이상의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좋은 커피 한 잔을 하는 것과 비슷한 긍정적인 경험이다 - 하지만 그 커피가 당신을 깨워 주고 활력을 넣어주기보다는 허공에 주먹질을 하고 싶게 만든다거나 몸 전체를 전기충격으로 채운다거나 같은, 음악에서 얻을 수 있는 놀라운 감정들을 불러일으키는 것일 뿐이다.

Gareth Birckbeck> Whitehouse의 음악은 인류에 대한 혐오나 폭력성 속에서 점차 죽어가는 음악이라고 오해될 여지가 있는 것 같다. 실제로 당신은 극단적인 경험을 탐구하고 있기도 하고. 인류 자체나 인류의 문명에서, 당신이 보았을 때 마음속에 분노가 일어나는 부분이 있는가?

William Bennett> 나는 인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인류의 목적이나 도덕성 같은 것에 분노를 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종종 인생 전부를 인류와 인류의 문명에 대해 분노하며 낭비하고, 늙은 후에는 더 이상 분노를 유지할 수가 없게 되어 이전까지의 허무주의적인 사고관과 타협하게 된다. 나는 인류가 지구의 다른 동물들과 딱히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인류에게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흥미로운 부분이 존재한다면, 아마도 인간은 스스로가 결국 언젠가는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깊이 이해하고 있고 이 진실이 집단으로서의 그리고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행동에 궁극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이리라.

Gareth Birckbeck> 요즘의 록 음악에서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는가? 혹은, 당신의 미학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는가?

William Bennett> 전혀 없다. 록은 정말 짜증나는 음악이다 - 어째서인지는 잘 설명을 못 하겠는데, 록은 내가 싫어하는 음악적 요소를 전부 가지고 있다 - 록은 보수적이고, 잘난척으로 가득하며, 이 좆같은 세상을 자신이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록의 소리는 끔찍하며, 기타와 드럼이야말로 역겨운 딸딸이용 악기이다. 그리고 절망적인 음악이기도 하다 - 그냥 '록' 이라느니 '메탈' 이라느니 하는 단어만 봐도, 이 음악들은 늙은 정신을 가진 늙은 사람들을 위한 음악인데도, 아직도 끊임없이 워너비들이 나와서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자기 운이 좋기를 바라고 있다. 클리셰를 클리셰로 덮고 그 위에 클리셰를 처 바른 음악이다. [Rolling Stone]이나 [Q]나 [Spin]같은 음악잡지를 아무거나 하나 집어 보면 매 주마다 그런 워너비들이 넘쳐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음악들은 이미 예전에 다 들어보았으며 이젠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그런 워너비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블랙잭 테이블에서 불쌍한 도박 중독자들을 지켜보는 딜러가 된 것만 같다. 그리고 나는 지난 10년동안 기계들과 얼굴 없는 프로그래머들, 프로듀서들이 컴퓨터를 가지고 음악계를 서서히 정복해나가는 과정을 즐겼다 - 음악은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록 앤 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 죽어가는데에 조금이나마 일조하는 것도 기쁜 일이다.

Gareth Birckbeck> 가사적으로나 컨셉적으로나, 당신의 노래는 극단적인 내용으로 차 있다. "Extreme Music from Woman" 같은 행사에 참여했던 행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당신을 여성혐오 성향으로 여기는 의견들이 있는가?

William Bennett>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경향이 있다 -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는 다른 누군가에게 잘못 이해되고 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어떤 방식으로든 논리적으로 설명한다거나 정당화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사람들은 혼자서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여성혐오 양아치? 예술병 환자에 게이인 병신? 양쪽 모두 환영하고, 그렇게 불리는 것이 자랑스럽다. 하지만 이 것이 어떤 진실을 표현한다거나, 가리는 것은 전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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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William Bennett> 개인적으로는 좀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다양한 방향에서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다. 우리가 다루는 주제들이 너무 전문적인 주제들이어서, 매스 미디어의 주목을 받게 된다면 아주 위험한 폭발물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단지 존재하기 위해서만이라도 언더그라운드에 숨어야만 한다.

Chris Chantler> 하지만 밴드가 단순히 밴드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만을 청자로 두고 음악을 설파하고 있는 꼴이 아닌가 하는 걱정은 없는 것인가? 아무것도 기대하고 있지 못하는 순진한 면상들에 음악을 던져보고 싶은 충동은 없는가? 아니라면, 너무 안전한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은 없는가?

William Bennett> 무슨 느낌인지 알고 있다. 80년대 초반처럼 우리가 뭘 할지 어떠한 예상도 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의 면전에 대고 공연을 하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다. 관객이 보여주는 반응의 종류 자체가 다르다. 다시 그렇게 해 보고 싶은 마음은 항상 있다.

Chris Chantler> 이 시점에서 나는 극단적인 현대예술과 Whitehouse를 비교해 보고 싶다. 아이들의 손바닥으로 만든 Myra Hindley(역주: 아동연쇄살인 Moors Murders 사건의 범인 중 한명) 초상화(역주: Marcus Harvey의 작품)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미디어가 주목하면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뉴스까지 타는데, Whitehouse의 충격적인 노이즈는 언더그라운드 웹사이트에서 알 만한 사람들에게만 팔리면서 지하실에서 공연이 이루어진다.

William Bennett> (한숨을 쉬며) 그렇다. 우리 또한 이런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 본 적이 있다. 예술계에서는 어디까지 허용이 되는가에 대해… 문학과 영화, 음악, 예술을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주제다. 분야마다 갈 수 있는 한계치가 아주 다르며, 어디까지가 허용되고 어디서부터 충격적인지 또한 천차만별이다.

Peter Sotos> 가장 큰 차이점을 들자면, 다른 작품들은 '무엇이 충격적이고 무엇이 허용되는가'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 처럼 보이고, 그 부분이 실제로 작품의 핵심을 차지하지만, Whitehouse는 언제나 보다 더 개인적인 주제들에서 나온 음악이었다는 것이다.

Chris Chantler> 대화를 하면서 당신들은 Whitehouse가 개인적인 관심과 취향에서 비롯된 밴드라고 계속해서 주장해 왔다.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Whitehouse를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경험'의 극단이라고, 청자의 얼굴에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과 현실의 추악함을 짓눌러 바르는 밴드라고 생각해 오고 있었는데, 당신들은 이런 평가에 대해 긍정이나 부정을 하지 않으려 하고 있고, 그 덕에 Whitehouse에게 모호함이 씌워지고 있다. 이런 모호함 때문에 혼란이 발생하며, 책상머리에 앉아 타블로이드 신문이나 숭배하는 자칭 도덕주의자들은 스스로가 옳다는 믿음을 가지고 당신들을 흑과 백으로 나누려 한다. Whitehouse의 음악에 '도덕'이라는 주제가 들어 가 있긴 한가?

William Bennett> 나는 언제나, 도덕이라는 것에 딱히 심오한 의미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해 왔다. 사람들이 '도덕'에 대해 고민하고 논쟁하는 이유는 그 사람들의 의견 자체에 딱히 논리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Chris Chantler> 분노, 증오, 악의, 냉혹, 역겨움, 절망, 공포 - Whitehouse의 음악은 청자에게 가장 깊은 어두움을 꽂아넣는다. 밀도 높은 감정과 열렬한 허무주의가 섞여 불안한 혼합물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Whitehouse의 음악은 완전히 부정적인 음악인 것 같다. 혹시라도 긍정적인 요소가 조금이라도 있긴 한가?

William Bennett> 나는 우리의 음악이 완전히 긍정적인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음악으로 다가가겠지만, 그리고 그 누구도 우리의 음악을 '활기찬' 음악이라고 말하진 않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면 다들 놀랄 것 같긴 하다…

Chris Chantler> '카타르시스'라고 할 수 있을까?

William Bennett> 나는 그 단어를 쓰지 않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사회에서 잘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사회생활에서 딱히 문제를 갖고 있지 않으며, 사회부적응자같은 존재가 아니다.

Peter Sotos> 여러가지 측면에서 나와 Philip Best는 그렇게까지 핵심적인 위치는 아니다, 왜냐면 Whitehouse는 기본적으로 William Bennett의 머릿속에서 나온 아이디어고, 우리는 그 아이디어에 참여할 수 있는 허락을 받은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Whitehouse의 공연을 하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특정한 종류의 부정적인 감정을 분출시켜 없애는 행위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고, 사실 그것의 정 반대라고 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여기에 참여할 수 있어서 운이 좋은 편이다, 나는.

Chris Chantler> 그렇다면 공연을 할 때나 녹음을 할 때, 행복하다… 고 할 수 있는 감정을 느끼기도 하겠군? (Whitehouse는 웃음을 터뜨렸다)

Philip Best> 곡을 만들 때 절대적인 환희에 가득 차 있는 상태까지 간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 밴드를 시작하고 곡을 만들기 시작한 목적이 내면 속 깊은 불행함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

William Bennett> 말하자면, 그리고 내가 절대적인, 철저한 무신론자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밝히고 말하고 싶은데, 음악을 하다 보면 때때로 영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올 때가 있다. 뭐랄까 한 단계 높은 곳으로 닿는 느낌이 있고, 이 때엔 주먹을 있는 힘껏 강하게 쥐고 이빨이 부서질 정도로 꽉 물게 되는데, 이 순간이야말로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흥분이 찾아오는 순간이다.

Chris Chantler> 80년대 중반쯤 Whitehouse가 샌프란시스코 공연에서 Slayer와 같이 공연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Slayer는 전자음악에 가까웠었나, 아니면 쓰래쉬 메탈에 가까웠었나?

William Bennett> 당시 우리가 그들의 가사 일부를 가져다 불렀던 기억이 난다. 그 때 그런 음악을 하는 밴드가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었다. 그 곡이 무슨 곡이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가사는 분명 Josef Mengele(요제프 멩겔레)에 대한 내용이었다. 80년대 중반만 해도, 심지어 메탈 밴드라 하더라도 그런 주제를 가지고 가사를 쓴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놀라운 일이었다.

Peter Sotos> 그 당시에는 Venom이나 Slayer같은 밴드들이 있었고 그런 밴드들은 진정으로 극단적이고 위험한 밴드로 여겨졌으며 사람들이 엄청나게 빨아댔었다. 데스 메탈이라는 장르가 겪었던 상황과 같다. 하지만 당신이 그런 밴드들을 보고 겪게 된다면, 결국에는 아직 부족하다는 사실만을 알게 된다. 당신은 언제나 실망하게 될 뿐이다. 시끄럽게 떠들어 봤자 현실은 그보다 못할 뿐이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한 구조가 있어서, 망할 데스 메탈 밴드들 마저도 코러스-솔로-브릿지 구조를 가진 곡들을 써 댄다. 아직도 그런 공식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나중에, 대화를 하다가, Sotos는 결국 [Reek of Putrefaction]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Chris Chantler> 그러면 Whitehouse는 음악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Peter Sotos> (건조하고 낮은 목소리로) 모두 Whitehouse 같은 소리를 내야 한다.

William Bennett> 오늘날의 음악에는 상상력이 크게 결여되어 있다. 예술계와 비교해 보면, 우리는 사실상 르네상스 시대에 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모두가 형식을 따른다는 말이다. 유화를 써야만 하고, 정해진 프레임 속에서 그려야만 하고. 예술계가 흥미로운 이유는, 형식과 구조라는 측면에서 음악계보다 훨씬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음악이 덜 상업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좀 더 추상적인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Peter Sotos> Whitehouse는 음악 바깥에 존재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Whitehouse는 언제나 장르나 유행을 떠나서 존재했었다.

William Bennett>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것 너머로 훨씬 더 넓은 목표의 바다가 있다. Whitehouse가 아직 하지 못한 것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다. '이보다 더 멀리 갈 수는 없다'는 것은 절대 사실일 수 없는 명제다.

Chris Chantler> 다음 Whitehouse 앨범(역주: [Cruise])에 대해서도 적용되는 말 같다.

William Bennett> 나는 Whitehouse의 음향의 진화에 대해 다양하게 실험해 왔으며, 이는 청자들의 인내심의 한계에 도전하는 결과를 낳았다. 새 앨범은 결코 사그러들지 않으며 무자비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곡까지 재생하기 힘들어할 것이며, 그들의 신경을 긁는 앨범이 될 것이다.

Chris Chantler> Whitehouse의 팬들조차도 말인가?

William Bennett> 물론이다. 그 동안 Whitehouse에게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 중 다수가 떨어져 나갈 것이다. 그들은 이번 앨범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이, 새로운 사람들이 이번 앨범을 좋아할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반대로 아마 우리는 이번 앨범을 통해 많은 수의 팬을 잃을 거라고 예상한다. "A Cunt Like You" 같은 곡을 고른 이유는 이 곡이 우리의 새로운 방향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지만, 이 곡 보다 두세 단계는 더 앞으로 나가고자 한다. 새로운 영역으로 갈 것이다. 좀 이상하지만, 진정으로 사악한 음악으로. 사람들이 믿고 있는 영역보다 더. 정상적인 사람들이 참을 수 있는 영역보다 훨씬 더 바깥으로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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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usanlawly.freeuk.com/textfiles/wbinterview01.htm

2000. 09

Judith Howard> 새 앨범 (역주: [Cruise]) 의 이름은 정해졌는가?

William Bennett> 몇몇 수록곡들의 제목은 확정되었지만 앨범 자체의 이름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임시로 붙여 둔 이름은 있지만 아직은 공개할 때가 아니다. mp3.com 사이트에 이미 올라가 있는 "Movement 2000"이 수록될 예정이다. Peter Sotos와 Steve Albini의 작품인 "Public"이라는 곡도 들어 갈 예정이며, 이 곡은 [Mummy and Daddy] 수록곡 "Private"의 연장선상에 놓인 곡이다. "Private"를 둘러싸고 상당한 논쟁과 비난이 오갔었지만, 나는 "Public"이 이번 앨범의 다른 '음악같은' 곡들을 잘 돋보이게 해 줄 수 있는 일종의 포장지로 생각한다. 몇몇 사람들은 이런 방향의 곡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보내 주었었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대부분은 싫어했다. 하지만, 무슨 의견이 나온다고 해도, 나는 "Public"이 파워 일렉트로닉스라는 장르를 가장 잘 대표하는 곡이라고 믿는다.

Judith Howard> "Movement 2000"을 발표했을 때 여러가지 이유로 부정적인 의견이 많이 나왔던 것 같은데, 의견을 말해달라.

William Bennett> 나는 "Movement 2000"이 대단한 곡이라고 생각하며, 이 곡은 엄청나게 유명해졌다. 비판을 많이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좋은 것이다. 이런 종류의 음악은 의견을 양분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 사실, 우리가 그 동안 게시판에 썼던 여러 글들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Mummy and Daddy]의 거의 모든 수록곡들이 비슷한 평가를 받았었다. 대부분의 청중으로부터 좋다는 의견을 받는 것은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다.

Judith Howard> '노이즈' 음악의 현재 상황에 대한 의견을 말해줄 수 있겠는가?

William Bennett> '노이즈' 음악? 흠, 아쉽지만, 거의 바닥을 친 상황이라고 본다. 흔히 말하는 '재패노이즈' 음악을 하는 장발의 프로그레시브 록 팬들은 죽었다. 나는 그들이 사실 처음부터 '빌려 온 시간'을 살고 있었다고 본다. 그 장르는 80년대 후반 시작될 때 부터 순전히 이국적인 일본 반문화에 매료된 서양인들에게 의존해서 시작했었던 장르였다. 본디지를 비롯한 일본 포르노그래피, 교복을 입은 동양적인 여학생들, 새롭게 유행했던 비디오 게임들, 망가와 애니메이션 등등, 일본이 제공하는 대안적인 문화와 미학이었을 뿐이다. Masonna라던가 Violent Onsen Geisha라던가 어쩌구저쩌구 하는 CD들 그리고 CD를 포장하고 있는, 그 뭐냐, '오비'들… '오비'? 맞다, 그 CD 겉에 포장지처럼 둘러져서 일본어로 뭐가 쓰여 있는 귀엽고 작은 띠지 말이다. 일본인들이 그 띠지를 '오비'라고 불렀던 것 같다. 정교하고 가끔은 섹시하기까지 한 표면이 커피 테이블 위에 놓여 있으면 환상적으로 보인다. 특별히 헤비 메탈 팬이나 비슷한 사람들이 차 한잔 마시러 오면서 커피 테이블 위로 시선을 줄 때 말이다. 어떤 사람이건 간에 100 CD 짜리 'Merzbox'에 'Merzposter', 'Merzbook', 'Merzmobile', 아니면 뭐가 되었든지간에 그런 걸 갖고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 사람의 'Merzrom'이나 다른 CD를 딱히 재생하지 않고 있어도 잘 먹힐 거다). 하지만 이 광경에서, "음악은?" 이라는 질문을 반드시 던져야 한다. 나는 언젠가 Whitehouse와 다른 '노이즈' 밴드들 간의 차이에 대해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내 개인적인 의견은 제쳐두고라도,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은, Whitehouse는 누군가 정말로 듣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재패노이즈 팬들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자기들이 팬이라고 주장하는 그 음악들을 자기가 정말로 정기적으로 듣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고 본다. 대다수의 '재패노이즈 팬'들은 사실 록 앤 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내용은 어디에 갔는가? 극단적인 음향과 노이즈의 활용은 아주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지만, 그 '커피 테이블 표명' 이상의 수단이 될 수는 없다.

Judith Howard> 하지만 [Extreme Music From Japan] 같은 컴필레이션을 만드는 데 참여하기도 했었잖는가?

William Bennett> 나는 그 앨범이 훌륭한 앨범이라고 생각하며 '재패노이즈'라는 장르가 정점에 올랐을 때의 가장 중요한 앨범이라고도 여긴다 - 하지만 그 앨범 이후 재패노이즈라는 장르는 어떤 방식으로든 진보, 발전을 해야만 했었다. 그리고 명백히, 그러질 못했다.

Judith Howard> 특정한 매거진들, 예를 들자면 [The Wire], [Select] 등등이 Whitehouse를 의도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며, 특별히 최근 얼터너티브와 인디펜던트 밴드들을 다루었던 Martin C. Strong의 책 ([The Great Alternative & Indie]) 에도 의도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William Bennett> 뭐 어떻게 본다면 짜증나는 일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너무 유치하게 하찮으며, 스스로의 무식함과 멍청함을 드러내는 꼴 밖에 안 되지 않나. 하지만, 지난 20여년간 해 온 음악을 나 스스로는 진심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불멸성' 이라던가 '명예' 같은 걸 바라지는 않는다. 역사적인 가치를 입증받고 싶지도 않고, 내 이름이 책자에 실리기만을 바라며 남들의 후장을 핥고 다니고 싶은 마음도 없다. 게다가, 좀 이상하게 생각될 수도 있지만, 이 밴드의 존속과 성공 여부는 매체에 이름이 언급되지 않고 계속해서 덜 유명한 채로 있을 수 있느냐에 크게 달려있다. 만약 우리의 전문 분야 - 면상을 후려치는 듯한 내용의 주제와 대상들 - 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고 사람들이 주목하기 시작한다면, 상당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더 말해 보자면, 만약, 당신이 말한 것처럼, 누군가가 우리를 의도적으로 배척하려 한다면, 그건 우리에게는 사실 칭찬이다. 우리의 존재 가치를 제대로 입증하는 일이다. 그래, 록은 광폭하고, 좆같은 반항아들이고, 진짜 저항세력이고 - 악마의 음악? 뭐 그럴 것이다, 록 음악 하는 놈들의 미성숙한 꿈 속 세계에서는. 당신이 언급했던 그 책에 대해 첨언하자면, 웃긴게 그 책에는 Come이라는, 우리가 만들었던 Come의 이름을 베낀 미국 록 밴드가 [Rampton] 앨범을 만들었다고 잘못 기재되어 있더군. 요새 누가 Come에 대해 신경이라도 쓰나?

Judith Howard> 요새 관심있게 보는 것은 무엇인가? 영감을 받는 대상은?

William Bennett> 내가 관심을 갖는 대상 중 대다수는 이미 지난 음악들에서 주제로 등장했었다. 현재 내가 집착하는 것은 특정한 타입의 가정폭력, 폭식증이나 거식증 같은 식이장애와 이에 관련된 다른 증상들과 결과들이다. 최근 나는 영어로 쓰여진 책들 중에서는 흥미로운 책들을 많이 찾지 못하고 있다. 물론 영어로 쓰여진 책들 중에도 영감을 주는 좋은 책들이 있긴 하며, 당연히 Peter Sotos의 최근작 [Tick]은 아주 훌륭한 책이다. 아마 내가 책을 정말 열심히 찾아 보는 성격이라, 영어로 쓰여진 책들 중에서 아직 보지 못한 책들이 이젠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은 프랑스어나 스페인어권의 책들을 읽고 있다. 예를 들자면 최근에는 사드 백작의 가장 덜 알려진 책들을 다시 한 번 읽고 있으며, 보다 더 무명인 책들도 읽고 있다. 추천하고 싶은 책 리스트는 웹페이지에 올려 두었다.

Judith Howard> 작년 바르셀로나 공연에서 벌어졌던 일에 대해 진실을 알려 달라.

William Bennett> 무슨 의미인가?

Judith Howard> 뭐, 여러가지 뜬소문이 많이 돌고 있던데…

William Bennett> 아주 훌륭한 공연이었다 - 우리가 지금까지 해 온 공연들 중 가장 훌륭한 공연 중 하나였다. 시끄럽고 무례하며 거의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고 있었고, 아름다운 공연장에, 관객들은 자리에 앉아 있었고, 공연장 내부로 들어올 수 없었던 100~200명의 관객들은 밖에서 큰 스크린으로 공연을 보고 있었다. 몇몇 관객들은 우리의 공연을 보고 환멸을 느낀 것 같았다. 주로 록이나 메탈 팬들, 그것도 우리의 공연을 실제로는 처음 보는 사람들이 그랬는데, 우리더러 관객을 존중할 줄 모르는 놈들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아니 씨발 대체 뭘 기대했던 것이길래? 그 공연에 대해서 웹사이트에 많은 글들이 올라오긴 했었다. 공연이 끝나고 무대 뒷편과 호텔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수없이 많은 소문들이 돌아다니고 있는데, 거기에 대해선 아무 언급도 안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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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usanlawly.freeuk.com/textfiles/bailey.htm

1996

"그런 스타일을 적용해 보았자 안 먹힐 거다!" William Bennett은 댄스와 테크노 음악 형식에 대하여, 그렇게 말했다. "댄스 음악은 춤을 추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잘 먹힌다 - 하지만 동시에 음향의 순수성과 잠재력을, 극단적인 감정들을 열망하는 특성들을 희석시킨다. 게다가 댄스 음악은 유행을 너무, 너무 빠르게 탄다 - 나는 유행이라는 것에 상관이 없는 음악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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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usanlawly.freeuk.com/textfiles/whinterview03.htm

1983. 4. 25.

Jo Smitty> 언제 시작했으며, 왜 시작했는가?
William Bennett> 3년 반 전쯤이었나… 공허함을 채우려고 시작했다.

Jo Smitty> 라디오를 듣는 편인가 TV를 보는 편인가?
William Bennett> TV를 본다.
Kevin Tomkins> 맞다, TV 본다.

Jo Smitty> 음악이 청자에게 요구해야만 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William Bennett> 특별히 그래야 할 만한 것이 없다. 그러니까, 왜 그래야 하는지?

Jo Smitty> 음악을 시작하고 나서 누군가가 당신들의 음악을 좋아한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을 때 기분이 어떠했나?
William Bennett> 음, 나는 사람들이 우리 음악을 좋아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갑자기 깨달았던 순간은 없었다.

Jo Smitty> 아무도 좋아할 수 없을 정도로 공격적인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일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는가?
William Bennett> 아니.

Jo Smitty> 흠, 그렇다면, 당신 밴드의 목적은 무엇인가?
William Bennett> 그저 즐거움 그 자체를 위해서다.

Jo Smitty> 당신과 청자들의 즐거움 말인가?
William Bennett> 그렇다.

Jo Smitty>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같은 것이 있는가?
William Bennett> 없다.

Jo Smitty> 그냥 재미로 하는 것인가?
William Bennett> 즐거움 때문이다. 재미는 경박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경박하지 않다… 진지하다.

Jo Smitty> 중심이 되는 철학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는가?
William Bennett> 즐거움. 무슨 대가를 치루더라도 말이다.

Jo Smitty> 사드 백작에게서 가져온 것인가?
William Bennett> 맞다.

Jo Smitty> 그의 책을 읽어 본 적이 있나?
William Bennett> 전부 다 읽어보았다.

(Come Organisation 레이블 밴드들, Maurizio Bianchi, Ilse Koch, Peter Kürten, Peter Sutcliffe, 영화 [M] 등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Jo Smitty> 어째서 그렇게까지 '욕을 처먹어도 싼', '끔찍한' 사람들을 숭배하는 것 같은 태도를 취하는 것인가 - 그들의 어떤 부분에 끌리는가?
William Bennett> 그들은 대단한 사람들이다!

Jo Smitty> 어떤 의미에서 말인가?
William Bennett> 그들은 한 인간이 열망해야 하는 모든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즐거움을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표현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서 가장 최대의 것을 추출했다.

Jo Smitty>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즐거움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었다. 옳지 않은 일 아닌가?
William Bennett> 아니다.

Jo Smitty> 그러니까 당신은 타인에게서 무엇을 빼앗아 가더라도 옳다는 말인가?
William Bennett> 옳다는 것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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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rse with wound by OU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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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brainwashed.com/nww/words/wire1997.html



https://youtu.be/5WZWvQFfs00


나는 Stapleton을 5월 4일, 12시 30분, Finsbury Park에서 만났다. The Rock 'N' Roll Station에서. 사실은 The Union Chapel 에서의 Current 93 공연이 있던 밤, 공연이 끝나고 난 후에 잠깐 만나서 형식적인 인사도 나누고, 몇 번 전화로 잡담도 한 이후이기는 했다. 원칙적으로는 인터뷰를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사실, 그는 매스컴의 관심을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다녔었다. John Cage와 같이 작업한 사람들 중 하나였던 Morton Feldman을 인용하면서: 음악을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좋은 환경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환경이다. 우리는 둘 다 미친듯이 긴장하고 있었다.

나는 불현듯, 관으로 만든 문에 그가 쓰러질듯이 기대어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빅토리아 시대의 시체가 살아난 듯한 모습으로, 표면이 벗겨지면서 말아올려지는 지경에 이른 자신만의 실크해트를 쓴 모습으로. 온통 검정색 옷을 입고, 시대를 잘못 맞춘 듯한 모습으로. 원형의 검은 모자는 영원히 눈물이 어려 있을 것 같은 그의 시선을 그림자로 가려 주고 있었고, 떨어져 내리는 금발 몇 가닥이 그 위를 장식하고 있었다. 그는 독선적인 예술가에 딱 알맞게 자란 수염을 손가락으로 비틀어 꼬곤 했다. "최근에는 수염을 좀 더 짧게 깎아야 하나 싶다. 작업 장비에 수염이 끼곤 해서 말이지…"

Highbury Corner를 지나면서 힐끗 보니, Stapleton은 런던으로 돌아온 것을 마뜩치 않아하는 눈치였다. 그는 1989년부터 남부 아일랜드의 County Clare에 있는 염소 농장에서 지내며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런던에는 아주 가끔씩에야 들리곤 했다. "런던을 떠난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그는 토로했다. "진심으로, 내 아이들을 이런 곳에서 자라게 하고 싶지 않았다. 런던은 많이 변했고, 더 이상 내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한다. 게다가 Finsbury Park에서 어떤 놈들이 나를 땅바닥에 처박고는, 목에 칼을 들이밀고 흰둥이 개자식이라며 강도질을 했고, 바로 그 다음날은 아내가 강도를 당했다. 이젠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다." 담배를 말아 쥐면서 거리를 한번 쳐다 본 그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Morton Feldman이 아직 어렸던 시절, 그 누구도 그의 음악에 신경을 단 한 톨도 쓰지 않았다고 한다. 부모님도, 친구들도, 형제 자매들까지도. 그리고 바로 그 이유에서 그 시절이야말로 음악적 삶에서 창조력으로 충만하던 황금시대였다고 했지. 그는 홀로 남겨져 그 어떠한 외부의 간섭 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라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도 그런 기분이다. 최근 나는 더 이상 메일에 답변도 안 하고, 친구들과 음악에 대해 토론하는 것도 그만두었고, 아일랜드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나한테는 이런 고독이 최고의 창작 환경이었던 것이다."

"작은 방에 처박혀서, 음악을 만들고, CD에 넣고, 세상에 보내고 그 이후는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는다. 리뷰 같은 건 요청하지 않는다. 내 음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글을 써 주길 바라지 않는다. 10년간 메일에 답변을 해 왔고, 그 일을 이제는 안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제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다. 아무런 리뷰도 없다. 조금은 이상한 기분이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것이 그냥 사라져 없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Steven의 친한 친구이자 Current 93의 멤버인 David Tibet과 H.N.A.S. 멤버이자 교정기를 낀 Christoph Heemann를 만나기로 약속한 펍에 도착했다. 맥주를 약간 마시고, 상당히 별로였던 망고 버거를 먹고, David가 실없이 내뱉는 시골 스타일 농담에 어울려주고. 이 둘은 Joe Meek의 음반을 찾아보러 떠나갔다. Steven은 떠나는 두 사람을 지긋이 바라보며 슬픈 듯이 우물거렸다. "내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인 것은 맞다. 하지만 나에게는 또 다른 측면이 있어서, 뭐 잘 알고 있을 것 같은데,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어울리고 술도 마시고 하는 것을 좋아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창작에 관해서라면, 염소 집을 새로 짓는 것이든 조각품을 만드는 것이든 그림을 그리는 것이든 음악을 만드는 것이든, 다 같다. 어떤 창작이던지 간에 에너지가 필요하며, 다른 사람이 들어올 수 있을 자리가 없다. 그래서 Nurse는 '밴드'가 될 수 없는 것이다 - 딱히 타협해서 새로운 멤버를 끌어들일 생각도 없고."

Stapleton을 규정하는, 그리고 그가 인생을 살면서 내려 온 거의 모든 결정들에 영향을 준 두 특징이 드러나고 있었다. 고독을 추구하는 성격과, 자신이나 자신의 예술에 있어서는 그 어떠한 타협도 있을 수 없다는 집념. 런던의 Finchley에서 지내던 어린 시절의 Stapleton은 예술 학교에 진학하겠다는 야망을 갖고 있었고, 마침내 Hornsey Art School에 입학할 수 있었지만, 답답해 미칠 것 같은 분위기를 버티지 못하고 무려 7일간의 대장정 끝에, 학교를 스스로 나서게 되었다. "그냥 나와버렸다. 정말 실망했었다. 엄청나게 멋진 곳일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으니까." Stapleton은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아트 스쿨은 나랑 맞지 않았다. 자퇴 후 1년을 쉬었던 것 같다. 16살이 되었고, 돌이켜 보면,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될 한 해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 해, 나는 내가 공부를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바깥 세상에는 엄청나게 멋진 음악들이 넘쳐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별히, [Psychedelic Underground]와 [White Light/White Heat]는 가장 중요한 발견이었다. 나는 그 1년을 방구석에 처박혀서 딸딸이나 쳤다, 기본적으로 정말로 자위를 하루에 20번씩 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 무렵부터 '작업은 혼자 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는 처음으로 안경을 벗으며 묘하게 씨익 웃었다. "그 1년은 나에게는 정말로 즐거운 한 해였다. 당시의 나는 생물학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집에 5개인지 6개인지 어항을 가져다가 여러 종류의 생물을 집어넣고 유심히 관찰했으며, Amon DüülThe Velvet Underground를 들었고, 여성에 대한 몽상을 하며 지냈다. 그러다가 크라우트록에 빠져들었으며, 방을 나와서, 17세의 나이로 독일로 향했다.

68~72년의 독일은 XholKluster를 비롯한 일련의 밴드들이 일으킨 음악적 변혁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이 혼란은 젊은 Stapleton에게는 일종의 계시로 다가왔으며, 그는 곧 강박적으로 음반을 수집하며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음악의 전도를 일삼는 사람이 되었다.

"13살이었나 14살이었나, Oxford Street에 있는 Virgin 레코드 가게에 들어갔었는데, 그 곳에서 엄청난 보물을 발견했었다." Steven은 회고한다. "Amon Düül의 [Psychedelic Underground]. 당시 이 음반은 말도 안 될 정도로 비싼 수입반이었는데, 도저히 갖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금을 주고 구입해서 집으로 돌아와 들어보았을 때, 음반은 충격 자체였었다. 이전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건 전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그 무엇보다도 가장 아나키즘적인 음반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내 인생은 그 음반을 발견하기 전과 후로 나뉜다고 봐도 될 정도였다. 곧바로 Amon Düül의 다른 음반들을 찾아보았고, 주변 레코드 가게에서 다른 독일 밴드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Steven과 그의 친구 Herman Pathak은 짐을 챙겨들고 곧바로 독일로, 그 광기의 현장을 직접 목격하러 떠났다. "한 1년정도 머물렀던 것 같다. 밴드들을 만나고, 한정반 앨범을 수집하고, 파티에 가고, 투어 운전수 역할도 해 보고. Guru GuruKraan의 투어를 도왔고, Birth Control이나 Embryo같은 여러 밴드들의 일도 도왔었다. 아트워크를 만들어 주거나 앨범 슬리브 디자인을 해 주기도 했다. Cluster의 한 앨범 디자인도 했었는데, 레코드사가 바로 거절했었지. 독일의 음악은 영국이나 다른 유럽과는 차원이 달랐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당시 나는 사운드 엔지니어 Connie Plank와 같이 지냈는데, 그는 자기가 만든 음반 중 단 하나도 미국이나 영국에서 발매된 적이 없다고, 그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Steven은 주절거리는 것을 갑자기 멈추었다. 흘러나오고 있는 The Stone Roses 노래를 지워버리고 싶어하는 것 처럼, 그는 Becks 맥주병으로 탁자를 후려쳤다. "당시의 독일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것은 전례가 없던 새로운 무언가였다. 고작 4년밖에 유지되지 못했지만, 그 짧은 기간동안 나타난 것들은 정말 대단한 충격이었다. 지금 다시 들어보더라도 말이다. 언젠가는 다시 유행이 그 것들로 돌아갈 거라고, 사람들이 당시의 크라우트록을 이해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하다면, Stapleton은 현재의 크라우트록 리바이벌에 대해, Julian Cope의 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열광하고, 기뻐하고 있다. 좋은 일이다. 개인적으로도, 재발매되는 음반들을 구입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아주 훌륭한 일이다. Julian Cope의 책은 정말 훌륭한 책이고, 개인적으로도 정말 좋아하는 책이다. 많은 사람들이 '진짜'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그 좆같은 Stereolab 같은 건 안 들어도 된다. 대신 Neu!를 들으면 된다. Stereolab이 어디서 아이디어를 훔쳐와서 음악을 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Kraftwerk를 베껴대는 수많은 테크노 밴드놈들을 생각해 봐라 - 사람들은 Cluster가 혼자서 애시드 하우스라는 장르를 시작했다는 사실에는 관심도 없었고 전혀 알지도 못했었다. Moebius의 초기 앨범들을 들어보라, 얼마나 시대를 앞섰었는지. Kraftwerk의 첫 앨범을 들어보라, 얼마나 충격적이고 혁명적이며 진보적인지. 가장 최신으로 나온 음악들도, 그들에겐 비견될 수 조차 없다.

"나는 크라우트록이야말로 현대 음악사에서 가장 중요했던 사조라고 생각한다. 내가 하고싶은 말은, The Beatles는 좆까라는 거다! The Beatles와 크라우트록은 아무 관계도 없다. 크라우트록은 클래식 음악계의 아방가르드 운동과 프리재즈에서 발생한 것이지, 팝 음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크라우트록은 독립적이었고, 야성적이고 강렬했으면서도 냉정했고, 그래서 더 좋은 음악이었다. CanThe Beatles의 "I Am The Walrus"를 듣고 영감을 받아 밴드를 시작했다고 말했던 것은 그냥 주류 서양 음악가들과 팬들에게 어필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고 생각한다. 업계에 '들어가기 위해서' 그런 말을 만들어냈던 것 뿐이리라. Irmin Schmidt는 Karlheinz Stockhausen를 공부했었고, Jaki Liebezeit는 프리재즈를 하던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Nurse에 대한 구상은 독일에서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을까? "물론이다. 독일에서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나와 비슷한 종류의 사람들을 만났다는 느낌을 받았고, 이 것이야말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별히, 크라우트록의 첫 두 앨범들, KlusterAmon Düül의 차디찬 냉혹함은 내 마음을 완벽하게 사로잡았다. 나중에 나는 내 레이블 United Dairies를 통해 잉글랜드에서 완전히 무관심이었던 크라우트록 음악을 수입하려고 애를 썼었다. Guru Guru의 음반을 발매하고, Neu!Faust에서 활동했었던 Uli Trepte와 뭔가를 만들어 보려고 녹음도 진행해 보고 ([Hot On Spot/Inbetween], UD024). Pole, Limpe Fuchs, Anima 등등과도 만나 그들의 음반을 United Dairies를 통해 발매했었다. 가능한 한 많은 크라우트록 음악가들과 뭔가를 해 보려고 했었지."

Stapleton은 영국으로 돌아와, 온갖 종류의 저임금 노동을 하며 얻은 수입을 전부 음반 사 모으기에 탕진했다. "Nurse 활동을 하기 전까진 음악을 직접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냥 듣는 것이 좋았다 - 친구들이 가끔 내가 듣는 걸 들어보곤 '시벌 이게 뭐여, 완전 좆같네, 이딴 쓰레기는 누구라도 만들 수 있겠다' 라고 말해도 나는 딱히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Nurse With Wound는 어쩌다가 시작하게 된 것인가? "흠, 언젠가 내가 한 스튜디오에서 간판도 그리고, 스튜디오 룸 문에 예약자 이름을 써 넣기도 하고, 의자를 정리하기도 하는 등 잡일을 하던 때였다. 거기서 일하는 사운드 엔지니어와 실험적인 음악들에 대해서 말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엔지니어가 실험적인 음악을 녹음하고 싶은데 스튜디오를 찾기 힘들어하는 밴드를 알고 있다면 나한테 연락을 해도 좋다고, 싼 값에 해 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 스튜디오는 소호의 Berwick Street에 있는, 아주 멋진 48트랙 스튜디오였다." Stapleton이 생각하기에 이 기회는 놓치기에는 너무나도 비현실적이면서도 운명적인 기회였다. 그는 곧바로 이야기를 꾸며내 자신이 실험음악 밴드에 있다고 구라를 쳤다. 다음 토요일로 스튜디오 예약을 할 수 있었다. "집으로 곧장 가서 가장 친한 친구 두 명, John Fothergill과 Heeman Pathak에게 연락해서 말했다. '…우리는 밴드에 있는 거라고, 아무 악기나 가져와, 소리를 낼 수 있는 거면 아무거나 말야, 토요일에 나와. 어떻게 되나 보자고.' 그렇게, 하룻동안, 우리는 [Chance Meeting on a Dissecting Table of a Sewing Machine and an Umbrella]를 만들게 되었다. 우리의 첫 세션이었다."

첫 번째 실험으로써, 그리고 우연히 진행했던 녹음 세션으로써, [Chance Meeting on a Dissecting Table of a Sewing Machine and an Umbrella]의 혼란스러운 전자음들은 일종의 계시와도 같은 위치에 있을 것이다. 명목상으로는 크라우트록의 자유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이 앨범은 그 어떠한 음악적 레퍼런스와도 판이하게 다른 음악이었다. 물론, "Two Mock Projections" 같은 곡에는 Ax Genrich 느낌의 공간감 가득한 기타 연주가 들어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구상음악에서나 들을 수 있는 조각난 음향들, Derek Bailey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갑자기 습격하는 다이나믹, 고딕 양식의 성당에서 들릴 법한 으스스한 오르간, 원초적인 울부짖음이 무언가에 홀린 인간의 미학으로 뒤섞여 있다.

"완전히 즉흥연주였다. 6시간동안 녹음을 마치고, 다음날 2시간동안 믹싱을 했었다. 이전까지 단 한 번도 연주해 본 적이 없었는데." Stapleton은 이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 했다. "그 녹음을 하기 전까지 나는 악기라는걸 단 한 번도 다루어 본 적이 없었다. 정말로 '순수한' 음악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리라 - 그 정도까지 순수해질 수 있다면 말이다, 어떻게 되는 지 아는가? 그 둘, 나머지 멤버 둘은 정말로 아무런 생각 자체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나마 아이디어라고 부를 만한 것을 갖고는 있었다. 음악적인 배경이 있다고 말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은 나 뿐이었다."

"우리는 무언가 전자음스러운 것을 만들고 싶었다. 우리 셋이 가진 공통의 목표라고는 그것 뿐이었다. 우리는 즉흥연주를, 그것도 전자음의 즉흥연주를 했고, John Fothergill이 가져 온 기타와 Heeman Pathak이 가져 온 Bontempi 오르간, 내가 일터에서 가져 온 여러가지 종류의 금속 퍼커션을 가지고 이것저것 해 보았다. 이 세션이 음반으로 이어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 같은 건 전혀 없었다. 그저 무슨 일이 일어날지 한번 해 보자는 생각 뿐이었지. 그렇게 첫번째 날이 지나자 우리 모두는 너무 들떠서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믿겨지지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서, 받아온 원판 테이프를 엄청나게 큰 볼륨으로 틀어놓고는, 생각했다. '이거 대박인데! 우리가 할 수 있었어!' 그렇게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인터뷰를 잠시 중단하고 쉬면서 맥주를 몇 잔 더 마셨다. Steven은 다시 등을 뒤로 기대며 그림자 속으로 들어갔다. "이런…" 그는 한숨을 내 쉬고 있었다.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군. 지금 너무 심하게 긴장되서 말을 아예 못 하겠다. 왜 이러는 건지 이해가 안 되는데." 그렇게 말하며,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딘가로 떠돌아다녔다. 말문이 막힐 정도라고? 이제까지는 숨도 거의 안 쉬고 말을 했었는데.

다시 자리로 돌아오면서, 그는 담배 하나를 말아쥐고는 깊숙히 들이마시며, 스스로를 다잡는 것 처럼 보였다. "좋아, 어디까지 했었나?" 그는 말을 이어나갔다. "맞아, 우리는 첫 앨범이 너무 이상한 음악이어서 그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었다. 그 당시는 펑크가 막 시작해서 사람들이 스스로 모든 것을 하나하나 해 보던 시대였고, 해서 우리도 우리의 앨범을 스스로 발매해 보자는 의견을 가졌다. 500장이 전부 팔릴 거라는 생각 자체를 아예 해 본적이 없었는데, 발매해 보니 1주일만에 500장을 다 팔아치워 버렸다. 전부 말이다. Rough Trade가 100장 정도 가져갔고, Virgin도 상당히 많이 가져갔다. 그들은 앨범 커버만 보고도 상당히 마음에 들어했다 - 앨범 수록곡들이 완전 미쳤을거라고 예상했었던 것 같다."

"United Diaries라는 레이블을 직접 만들어서 앨범도 직접 제작해 보고 나자, 우리는 뭐랄까 스스로 할 수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 모두가 정말 좋아했었던, Ohr라는 이름의 독일 레이블이 있었는데, 여기서 나오는 앨범은 하나같이 흥미롭고 뭔가 색다른 음악에 커버 디자인까지 좋았었다. 우리는 그 독일 레이블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그러다가 The Lemon Kittens의 [Spoonfed and Writhing]이라는 EP를 듣게 되었고, 곧바로 연락을 취해 그들의 첫 번째 LP를 발매했다. The Bombay Ducks라는 밴드와도 만나서 그들의 앨범도 발매했다. 그 무렵 우리의 두 번째 앨범 [To The Quiet Men From A Tiny Girl]도 완성되어 이것 역시 발매했다 - 일이 점점 더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To The Quiet Men From A Tiny Girl]과 그 다음 [Merzbild Schwer](이 때는 Heeman Pathak이 탈퇴하여 밴드가 듀오로 축소되었다)를 거치며, Nurse의 음악은 보다 더 추상적인, 왜곡된 목소리와 스튜디오 장난질 뒤에 가려진 모호한 음악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그 다음 LP인 [Homotopy To Mary]에서야, 진정한 Stapleton만의 음악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내가 John과 결별하게 된 것은 The Lemon Kittens 때문이었다. John은 Danielle Dax에게 사실상 완전히 빠져버렸고 이 사실이 나와 John을 완전히 갈라서게 만들었다. 한 1년동안을, John은 John 자신의 United Diaries를 운영하고, 나 또한 나만의 United Diaries를 운영하는 식으로 일이 흘러갔던 것 같다. 그와 나는 오직 새 앨범을 발매할 때, 카탈로그 넘버가 꼬이지 않게 하려고 서로에게 통보할 때에만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The Bombay Ducks의 앨범을 발매했고 The Lemon Kittens의 [Cake Beast] 앨범도 발매했다 - [Cake Beast]를 발매하자는 결정은 오로지 John의 생각이었다. 나는 그 앨범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The Bombay Ducks의 앨범 같은 건 결코 발매할 생각이 없었다.

마침내, 피할 수 없는 충돌이 발생했고, 결국 Steven은 United Diaries를 운영하고, John은 Commercial Records라는 산하 레이블을 따로 만들어 운영하는 방식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Commercial Records는 곧 2개의 LP를 발매하게 되었고, 이 2개의 LP는, Stapleton의 의견을 빌리자면, "좆쓰레기"였다.

몇 번의 공동작업 시도 (Jim Thirwell aka Foetus와 함께 한 [Insect And Individual Silenced], 그리고 Whitehouse의 William Bennett과 함께 한 [The 150 Murderous Passions]) 이후, [Homotopy To Marie]는 멤버간 결별 이후 첫 Nurse의 앨범이었고, Steven에게 있어서는 사실상 첫 '진짜' Nurse With Wound 앨범이었다. "그 무렵 나는 마침내 스튜디오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녹음 장비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특정한 소리를 만들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 감을 잡아가게 되었다. 작곡에 대해서도 약간 배웠으며, 곡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다이내믹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이전까지는 전혀 알 수 없었던 지식들을 알게 되었다. 그제서야 믹싱 데스크에 앉았을 때 뭘 해야할지를 알게 되었다. [Homotopy To Marie]를 만들고 나자 만족스럽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 한 1년정도 작업했던 앨범이었다. 돌이켜 보자면 그 앨범을 통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영감을 받았던 것 같다." [Homotopy To Marie]는 으스스한 앨범으로, 이전까지의 Nurse 앨범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일종의 '따뜻함'이 깃들어 있으며, 억눌린 열정과 다이내믹이 섬뜩하게 배회하는 음악이다.

1983년은 Stapleton에게 대단한 전환점이었다. 그는 마침내, 처음으로, 밴드 멤버들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으며, 동시에 평생의 친구이자 동업자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Tibet을 한 인더스트리얼 음악 페스티벌에서 만났다 (Tibet에 따르면 이 페스티벌은 The Equinox Event at the L.M.C. 였다고 한다)." Stapleton은 그 때를 회상하며 웃음을 짓고 있었다. "나도 그 페스티벌에서 음악을 연주하게 되어 있었는데, 대신 Rolf Harris라도 된 것 마냥 뒷편에 엄청나게 커다란 천을 드리워 놓고, 그림을 그리면서, 만들어 온 카세트 테이프를 그냥 틀었다. 캔버스를 세우고 뭘 좀 그려보려고 하니까 웬 놈이 빡쳐서는 나한테 지랄을 하기 시작했다. 그 시절 인더스트리얼 공연이라는 건 관심도 없는 병신새끼들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알잖나, 다 좆까라는, 이것도 좆까고 저것도 좆까라는 놈들이 많았고, 나찌 밴드들도 넘쳐났으며, 순수하고 멍청한 병신 인간쓰레기들이 곳곳에 있었다. 아무튼 나는 무대 앞에서 William Bennet(Whitehouse 멤버)하고 앉아 있었는데, 어떤 미친놈이 지 좆을 꺼내더니 무대 위에 오줌을 흩뿌리면서 회전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내 바지에도 그 놈의 오줌이 묻었다. 정말 미칠듯이 화가 나서 그 미친놈이랑 싸우기 시작했는데, 미친놈한테 이렇게 말했던 게 기억난다: '꺼져, 개 좆같은 새끼야, 안 꺼지면 대갈통을 부숴버릴거다 씨발놈아.' 그런데 그 미친놈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좆까 씨발 Nurse With Wound가 공연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안 내려갈거다 개새끼야!' '내가 그 Nurse With Wound다 씨발놈아, 그리고 좆같은 연주 안 할거니까 좆대로 하던지,' 그러고 나는 그냥 다 때려치고 길 건너 술집으로 가서 정말 심하게 화가 난 채로 앉아있었다. 그 개새끼가 아직도 거기 있던지, 아니면 사라졌던지, 상관없었다. 공연은 물 건너갔고 그냥 아무것도 안 하겠다고 결심하고 있었는데, David Tibet이 다가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봤다고 말을 걸어왔다. '진정하고, 난 David Tibet이라고 하는데, Psychic TV 멤버야. 네 공연 멋졌는데 말이지, 술 한잔 사도 될까?' 그렇게 한잔 하면서 대화하다 보니 우리는 아주 친한 사이가 되었다. 지금까지도 내 가장 친한 친구이다."

Tibet은 곧 Psychic TV를 탈퇴했고(적어도 Tibet의 주장에 따르면 그렇다, 사실 Stapleton은 다르게 기억하고 있었다), The Equinox 페스티벌에서 Dog's Blood Order라는 이름으로 공연했다. Tibet은 한동안 밴드를 만들어서 그 자신이 집착하고 있었던 두 개의 개념, Tibet의 표현에 따르자면 "종교가 그려내는 묵시록적이며 종말적인 이미지들, 그리고 아이들이 부르는 전래동요들"을 탐구해 보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제 막 Lashtal, 23 Skidoo 드러머 Fritz, Psychic TV 멤버 Jhonn Balance와 함께 세션을 해 본 상황에서, Tibet은 Stapleton에게 Current 93에 참여해서 [Nature Unveiled] 앨범을 만드는 작업을 해 보는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Stapleton은 그 제안에 대한 화답으로써 [Nurse called Gyllenskold, Geijerstam and I at Rydbergs]라는 12인치 EP를 만들어 주었다. Tibet은 최근 Fritz를 해고하고 Psychic TV 탈퇴를 거부한 Balance와 갈라졌다(Balance는 나중에 Coil을 결성하게 된다). 이 모든 일들은 조각난 기억들로 복잡하게 얽혀있어, 불분명한 구석들이 많은 미심쩍은 연대기가 되었다.

"나는 이 밴드(Current 93)에서 내가 해야할 일은 Tibet의 목소리를 돋보이게 해 줄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이라고 본다." Stapleton은 말하던 도중, 어깨를 으쓱했다. "Tibet은 Nurse With Wound 음악들을 좋아했으며, 거의 모든 Nurse With Wound 앨범에 게스트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나와 동류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그를 정말 좋아한다. 그는 대단한 재능을 가진 친구이며, 같이 작업할 때의 그 에너지가 좋다. 그는 굉장히 솔직한 사람이며 일이 바로잡힐 때까지 정말 최선을 다 한다. 제대로 된 보컬 트랙을 위해 20번 넘게 녹음을 하는 건 일상이다. 이러이러한 분위기를 원한다며 솔직하게 말 해주는 사람과, 그리고 그 바램을 내가 이루어 줄 수 있는 사람과 같이 일을 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요새는 거의 Current 93에서의 작업을 내 솔로 작업보다 더 좋아하기까지 한다. Nurse With Wound 작업은 상당히 힘든 일이다. 하지만 Current 93과 같이 작업할 때는 부담감이 훨씬 덜한데, 이 작업의 중심은 내가 아니라 David Tibet과 그의 시, 그의 전달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 중심을 받쳐주는 일은 정말로 간단한 일이다. 이제 나는 사실상 Current 93의 전담 믹서/프로듀서가 되어가고 있다. David는 좀 더 포크스러운 음악에 빠져들고 있으며, 나는 그 음악에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더하는 역할이다. 최근 발매된 Current 93 앨범들은 거의 포크라고 할 수 있는 음악이지만 그와 동시에 아주 이상하고 기괴하게 비틀려 있으며, 나는 그 음악에 피드백과, 아마도 '아이들' 같다고 할 수 있는 느낌을 더한다."

Klaus Shultz가 생각나는 우주 유영의 느낌을 보여 준 1986년의 [Spiral Insana]와, 명상적인, 만트라가 부유하는 듯한 [Soliloquy For Lilith]를 발매한 후, Stapleton은 아일랜드의 염소농장으로 돌아갔다. 파멸적인 힘으로 가득하던 초기 Nurse With Wound 앨범들에 비해, [Spiral Insana]는 훨씬 더 '열려 있는' 음악이었고, 훨씬 확장된 음악이었다. Stapleton 또한 이 생각에 동의하고 있었다. "[Spiral Insana]는 아일랜드로 돌아가기 전에 만든 앨범이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아일랜드로 돌아가 있었다. 나는 점점 나이가 들고 있었고, 아이도 생겼으며, 점점 더 무던해지고 있었다… 정말로, 아일랜드로 돌아가 달라진 음악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변화같이 느껴졌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그런 세월과 변화에 반대하고 싶고, 어떤 점에서는 그러고 있다. 음악 작업을 할 때 그 속에 스패너부터 던져넣어 다 부숴버리고 시작하는 느낌이니 말이다. 특히 [Rock'n'Roll Station] 앨범을 만들면서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 앨범은 아무도 생각치 못했던, 심지어 나조차도 예상치 못했던 앨범이었다. 내가 그런 앨범을 만들다니. 내가 구상음악이나 실험음악을 갈수록 점점 덜 듣고 있고, 사실은 프리 재즈나 즉흥음악을 훨씬 많이 듣고 있다는 사실이 반영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Steven은 요새 리듬이라는 것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 관심사는 최근 Nurse With Wound 앨범 2개, [Rock'n'Roll Station]과 [Who Can I Turn To Stereo?]에 잘 드러나 있었다. 두 앨범은 맘보 뮤지션 Perez Prado에 대한 열광에서 나왔다고 말할 수 있었다. "나는 Perez Prado를 4년 전쯤에 태어나 처음으로 들었다. 나는 곧바로 빠져들었다. 완전히 집착하면서 Perez Prado의 앨범이면 어떤 것이든 전부 수집했다. 그의 음악은 아주 강렬한 리듬이며, 지난 3년간 엄청나게 들었다. 아마 이 경험이 내 음악에 반영되었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하고싶은 말은, 그러니까 나는 댄스 음악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난 춤 같은건 안 춘다 - 춤을 추다간 모자가 떨어질 것이다. [Who Can I Turn To Stereo?]와 [Rock'n'Roll Station] 같은 앨범에는 뭐랄까, 댄스 음악같은 느낌이, 리듬이 있고 나 또한 그 음악을 들으며 리듬에 맞춰 신발로 바닥을 쳐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춤을 추진 않을 거다. 그 앨범들은 집중해서 듣기 위한 음악이고, 청자의 귀를 위한 영화이며, 청자를 놀라게 하길 바라면서 만든 모험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난 이제 리듬이 있는 음악은 더 이상 안 한다는 것이다.

Stapleton은 Current 93의 앨범 [In Menstrual Night]를 언급하며, 그 앨범이야말로 David Tibet의 미학이 처음으로 실현되기 시작한 상징적인 순간이라고 말했다. 나는 Tibet이 언젠가 자신의 시에 대해 말해주던 기억을 떠올렸다. "나는 사람들의 꿈이, 마음과 영혼에서 죽어 없어졌을 때, 어디로 향하는지가 궁금했다." Tibet은 그렇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어떤, 이상한 공동묘지에 대해서 - 나는 파티에서 술에 좀 취했을 때, 점점 잠에 빠져들고 있을 때의 감정을 재현하고 싶었다. 잠에 빠져드는 당신은 어렸을 때의 목소리들을 떠올리기 시작하며, 그 목소리들은 멀어져가는 파티의 소음과 뒤섞이고, 옛 자장가들이 떠다니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기이한 콜라쥬가 된다. 그렇게 드럼이 들어오고, 꿈은 달의 영혼을 먹이기 위해 떠오른다." Steve는 미소를 지으며, [In Menstrual Night]에서, 특별히 앞부분인 "Sucking Up Souls"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설명했다.

"'Sucking Up Souls'는 병실에 누워있을 때의 경험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곡이었다. 그 때 나는 청력에 이명을 비롯해서 많은 문제가 있어서 병실에 입원했었다. 한밤중에 침대에 누워 병원의 소리들에 귀기울이곤 했었다. 병실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사람들의 발소리, 가끔씩 울려퍼지는, 철로 된 사물들이 부딫히는 소리들. David와 나는 그 소리들을 재현하는 것이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움직일 수 없는 침대에 누워 그냥 소리를 듣기만 해야할 때의 느낌. 그 느낌은 환상적이었다. 나는 몇날 며칠이고 누워서 온종일 그 소리들만 듣고 있을 수 있었다. 병원이라는 장소에는 진정으로 무거우면서도 독특한 어떤 분위기가 있다. 나는 그 병원만의 분위기에는 일종의 따스함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 보호받고 있는, 안전한, 차례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곳 - 그 무시무시한 약들을 주입받고 나서 누워 있으면, 거의 식물처럼 되는 것이다.

페티시즘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상세하게 묘사된 장면은, 멍하니 바라보았을 때에는 매력적으로 비추어진다. 하지만, 곧 당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사실상 죽어가고 있는 중이며, 생명유지장치와 인공호흡장비에 의지해서 겨우 버티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나는 그 부분까지 고려하지는 않았다. 사실, 그런 부분은 내가 생각했던 특유의 분위기를 더해줄 뿐이다. 간호사들은 그런 장면을 매일 볼 것이다. 그냥, 한번 상상해 보라. 밤에 침대에 누워 어둡게 불이 꺼진 복도를 바라보면, 그 끝에 수간호사가 불을 켜고 앉아 있으며, 그녀의 펜이 종이에 무언가를 적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침대에서 들리는 끼익거리는 소음들, 환자들이 돌아누우면서 나는 바스락거리는 소리, 잠깐 흔들리는 침대의 소리, 저 너머 병실에서 누군가가 물건을 떨어뜨리면서 나는 둔탁한 소리. 그 소리들의 반향. 아무것도 없는 벽에서 울리는 소리들."

그 정도의 정적을 경험하려면 아주 엄격한 규칙이, 아주 제한된 환경이 필요하다. 어린 시절이 생각나는 정적이다. 침대에 일찍 누워있으면 저 멀리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심야방송의 소음, 문이 닫히는 소리, 계단이 삐걱거리는 소리와 한껏 낮춘 목소리. 어째선지 무력감이 드는, 음향에 수동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퇴보적인 판타지.

Stapleton이 앨범들을 수집하던 어린 시절의 경험이, 수많은 음향을 듣고 그 감각을 키워가던 경험이 밑거름이 되어 불가피한 아일랜드 생활로 이어진 것만 같았다. "나는 하루에 4~5시간을, 대략 2천장의 앨범에 둘러싸인 채로, 끊김없이 음악만을 들으며 지내고 있다. 그 시간동안 나는 나 자신에게 어떻게 하면 '들을 수 있는지'를 가르치고 있다. 지난 20년간 흥미롭다고 생각되는 음악을 찾아다녔으며, 이제는 거의 만족할 만큼 채워서 더 이상 새로운 음악을 찾아다닐 필요는 없는 것 같다고 느낀다." '스스로 어떻게 잘 들을 수 있는지를 가르친다'는 구절이야말로 핵심일 것이며, 여기에서 John CageNurse With Wound사이의 연관성이 명확해진다. 수 년간의 듣는 경험, 혹은 귀를 열어두는 경험은, 마치 병실에서의 깨달음의 순간과도 같이, Steven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음향을 진정으로 듣게 해 주었으리라. 그렇게 그는 아일랜드의 황량한 자연으로 사라졌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가득 채운 소리를 듣고, 우주의 핵심에서 울려퍼지는 화음을 듣는 것에 만족하면서. 때때로 답장과 감사라는 형태의 서한을 밖으로 보내주면서.

"대충 22년정도 이 일을 해 온 것 같지만, 그 어떤 과찬도 음악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 나는 그런 종류의 걱정은 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행복하게 살고 있으며, 염소도 있고, 사랑하는 가족도 있고, 누구라도 원할 것들을 이미 가지고 있으며 내 음악까지 갖고 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나는 내가 듣고 싶으면서 아무도 만들지 않는, 이전까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음악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제 Steven을 생각할 때, 언덕과 County Clare의 오솔길들을 바라보며, 죽음과도 같이 조용한 밤에, 염소들과 함께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을 떠올린다. 별로 가득 찬 밤하늘 아래에서. 그저 듣고 있는 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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